송광수(57) 전 검찰총장이 오랜만에 대중 앞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12일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과정 특강을 통해서다. 그는 ‘사형수의 대부’ 삼중스님의 부탁으로 이 대학 배임호(50) 교수가 맡고 있는 ‘교정복지론’ 강좌에서 검찰과 형사사법 전반에 관해 두 차례 강의하기로 한 바 있다. 12일은 그 첫 시간이었다.
송 전 총장이 지목한 ‘국민의 정부 실세’는 과연 누굴까. 그는 당사자의 명예를 생각해선지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신병 악화를 근거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풀려난 분이 골프 잘 치고 목욕 잘 하니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어서 병이 나아서 남은 형기를 마쳤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도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국민화합을 위해 사면을 한다는데 정치인 석방이 국민화합입니까? 화합하려면 일반 국민까지 다 사면해야죠. 그런 분들이 (교도소에서) 나오면 오히려 화합이 깨지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영웅’, ‘검찰권 독립의 초석’ 등 온갖 칭송을 들으며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지 꼭 2년이 다 됐다. 네티즌들은 그를 ‘송짱’이란 애칭으로 부르며 팬클럽도 만들었다. 일반인들로선 요즘의 근황이며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할 법도 하다. 마침 어느 학생이 “혹시 활동 중이거나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한 송 전 총장의 대답이 재미있다.
“퇴직하니까 사람들이 새로운 단체 하나 만들자고 하더군요. 어느 우익 시민단체에선 공동대표를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 나라가 적화되면 어디서 살거냐’고 하면서. (웃음) 나는 관여 않겠다고 했습니다.”
검찰 재직 시절 달변에 농담 잘 하기로 정평이 난 그이지만 강단에 서니 유독 유머감각 발휘에 대한 ‘압박’을 느끼는 듯 했다. 만두를 무척 좋아한다는 송 전 총장은 만두의 유래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 제갈량이 중국 남부 소수민족을 정벌한 뒤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다’는 자책감에 인간 머리 모양의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 게 만두의 효시라는 것. 이처럼 ‘진지한’ 소개 뒤에 왕만두와 물만두의 유래에 관한 ‘익살스런’ 농담이 이어졌다. 강의에 참석한 100여명의 학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 아래 동영상 참조) 그는 “강의 도중 조는 분이 있으면 곧바로 ‘만두 이야기’ 2탄을 꺼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친정’인 검찰에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지만 따가운 충고도 잊지 않았다. 강연 도중 “우리 검찰이…”라고 운을 뗐다가 “아이고, ‘우리’라는 말을 써서 미안하다”고 정정한 것은 그만의 독특한 사랑 표현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능범죄에 대처하는 순발력 부족이나 과학수사의 미흡을 꼬집는 대목에선 매우 날카로웠다.
“범죄 수법은 점점 앞서가는데 수사가 못 따라갑니다. 미국 드라마 ‘CSI’를 보십시오. 제가 부산지검 근무 시절 유괴살해 사건이 터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수사의 실패였어요. 나중에 법원에서 줄줄이 깨지는 것 보고 후회도 참 많이 했습니다. 수사의 과학화·선진화가 정말 필요합니다.”
송 전 총장은 과학수사의 중요성 외에도 ▲ 검찰의 중립·수사의 독립 확보 ▲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사 ▲ 감찰을 통한 내부 비리 척결 등을 검찰의 현안 과제로 들었다. 그는 검사가 여전히 사회적으로 존경보다는 미움을 더 많이 받는 현실을 개탄하며 자신도 요즘 검찰이 밉다고 말했다.
“변호사 되고 나니 저도 검찰이 미워집니다. 뭐 부탁해도 하나도 안 들어주고…. 허허, 농담입니다.” 우리 검찰에 전관예우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반어법이었을까, 미움보다는 오히려 애정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2시간 강의를 마무리하는 이 말에 청중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송 전 총장은 오는 19일 형사사법 전반의 현안과 과제를 주제로 한 차례 더 강의를 가질 예정이다.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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