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샤인’의 배경은 지금부터 50년 후인 2057년, 50억년의 수명을 가진 줄 알았던 태양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눈과 추위로 어두워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즉 태양을 살리기 위해 떠났던 이카루스 1호가 사라진 7년 후, 이카루스 2호가 다시 태양에 불을 지를 맨해튼 섬만 한 크기의 핵탄두를 탑재하고 16개월의 비행에 들어간다.
태양에 다가가는 여덟 대원의 복합적인 심리와 그들 간의 갈등이 단조로운 우주선 내부와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사이를 오가며 드라마를 짜나간다. 그 와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무채색 우주선과 대비되면서, 한 구석에 자리한 초록색 산소정원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식물학자 코라존 역을 맡은 홍콩배우 양자경은 일단 완숙한 프로페셔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선장인 카네다역은 ‘라스트 사무라이’로 유명한 사나다 히로유키, 여기에 베네딕트 웡까지 아시아계가 맡았고, 흑인배우까지 포함하면 이미 절반은 백인이 아니다. 이 정도면 인종다양성을 살려 미래사회의 면모로 재현해 낸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그렇지만 인물들이 임무수행이나 대사에서 너무도 밋밋하게 그려지는 바람에 8인 8색 묘미를 드라마의 깊이로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SF영화의 주요 볼거리 목록인 세세한 일상적 과학기술로 재주를 보여주는 대신, 가까이 가면 눈이 멀거나 순식간에 타버려 죽을 정도로 강렬한 빛과 열을 가진 태양을 특수효과로 재현해 내는 것, 그리고 그걸 중심으로 이미지와 인물의 심리변화를 추적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특히 태양빛의 강도를 조절하며 그 빛에 도취되어 가는 인물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데니 보일식의 세련된 이미지 연출 솜씨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학과 종교가 만나는 삶의 근원으로서의 태양이란 존재가 부각되면서 인물들의 이기심과 생존 욕망이 드러나고, 그러면서 하나씩 죽어나간다. 이카루스 1호에서 건너온 위협적인 미지의 존재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말론 브란도의 좀비 판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그로 인한 공포가 ‘에일리언’적 폐쇄 공포를 연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고 보면, 태양을 핵탄두로 폭파시키는 드라마 설정이 무색해진다. 거창하지만 속내가 허한 드라마에서 빛나는 몇 개의 이미지,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이다. 그리하여 ‘선샤인’을 대면한 ‘이카루스의 추락’이 다시 증명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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