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 결과만 중시되는 풍토 그려
노동의 부정적 변화 예시문으로 등장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1909∼43)는 1934년 5월에 ‘자유와 사회적 억압의 원인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완성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개인의 행동은 주체적 판단과 선택에 의거해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삶은 자유가 보장되기보다 억압받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특히 노동자들이 그러했다.
이상적인 차원에서 노동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베유의 살아 생전 당시 공장 노동자들은 긴 노동 시간과 열악한 작업 환경, 속도 경쟁, 해고의 위협 등 노동 과정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수많은 요소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조자로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자본가에게 예속된 노예와 같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베유는 이처럼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체험함으로써 이들이 처한 문제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리하여 논문 작업을 마친 직후 교사직을 그만두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게 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인 노동일기는 자신이 체험한 단순 노무자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2003학년도 서강대 논술고사에서는 노동과 관련된 6개의 제시문이 주어지고 노동이 지니는 긍정적, 부정적 의미를 활용해 미래 사회의 노동에 대한 낙관적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논제가 주어졌다. 여기서 노동일기는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노동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어졌다. 생산의 결과물만이 중시되고, 그 과정에 투입된 노동이 등한시됨으로써 인간의 노동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분절(分節)되고 사물화됐다고 베유는 주장한다.
이와 대비되는 지문으로 주어진 것은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 축자 해석’의 일부가 인용됐다. 여기에서 노동은 인간에게 부여한 신의 사명이며, 노동을 통해 인간은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베유가 생각했던 노동의 이상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상적인 노동은 강제 노역이 아니라 자유 의지에서 우러난 창조적 행위며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노동 본래의 의미에서 왜곡된 채 나타나는 노동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다른 제시문 중 하나는 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한의 견해로, 노동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주요 내용이다. 맥루한은 기계적인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은 자신의 내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몰두하게 되고 노동은 예술적 자율성의 차원으로 승화된다고 보고 있다. 답안을 작성할 때 이러한 낙관론을 지지 또는 비판하되, 노동의 의미에 대한 원론적 논의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노동 현실을 논지 전개에 결부시키는 논거로 뒷받침해야 한다.
김수연 비타에듀 에플논술硏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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