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그동안 숱하게 쏟아져 나온 인류 기원에 관한 가설들을 통해서도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현생 인류의 출현을 15만년 전으로 추정했을 때, 과연 이 기간 인류는 엄청난 문명의 도약을 이룩했을까. 갑자기 어느 세계적인 유전학 전문가가 지금 우리가 가진 특성이며, 향유하고 있는 문화는 이미 수천 년 전 최초 조상에 의해 결정됐던 것이며, 아직도 우리는 선사시대에 속해 있다고 말한다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 것인가.
‘인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예술·사랑·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한 명의 신문기자와 세 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탁월한 지식을 동원해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며 300만년 동안의 인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주간지 ‘엑스프레스’의 편집주간인 도미니크 시모네가 묻고, 유전학자이면서 인구학 전문가인 앙드레 랑가네, 동굴 전문가인 장 클로트, 신석기시대 전문가인 장 길래느가 답하고 있다.
기존의 인류진화에 관한 많은 책이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가설들로 구술돼 끝까지 읽어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전문용어와 전문지식을 최대한 자제하고 마치 아이들처럼 가장 단순하고 고지식한 문제들을 제기하며 과학적·상식적으로 그 답을 찾아 나간다.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으며, 끝없이 펼쳐져온 인류의 탐험여행, 예술·사랑·전쟁의 시작, 종교의 탄생, 그리고 인간이 권력을 정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는 과정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책은 제목 ‘인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함축하고 있듯이 수백만 년간의 인간의 모험과 도전의 역사 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울과도 같다. 고인류의 지혜와 상상, 예술과 권력의 세계가 현대인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구분을 넘어서는 300만년간의 인류 흔적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인류학적으로 자성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은 문명의 기원이 유럽이 아닌 근동임을 새롭게 조명하고, 인종 구분이나 서구중심주의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낱 무의미한 것이며 따라서 ‘외모를 가지고 너무 뽐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던지기도 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우리의 지식, 기술, 세계관이 반박할 여지 없이 진보하고 있으나, 전대미문의 야만스러움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왜 그런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던진다. 책을 따라 읽으면서 역사 추진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큰 수확이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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