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브래드 피트)와 수전(케이트 블란챗) 부부는 모로코 사막을 여행 중이다. 유목민 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으로 야기된 총격에 수전이 피격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처드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그를 둘러싼 낯선 풍경이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와 문화적 이질감은 그를 끝없는 공포로 몰아간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리처드 부부의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아멜리아(아드리아나 바라자)는 아들의 결혼식 참석차 멕시코에 다녀오다 국경 수비대에 붙잡혀 강제추방 당하는, 삶을 송두리째 뺏기는 단절을 맛보게 된다. 멕시코인 보모는 위압적인 미국 공권력과 직면하면서 불법체류자라는 약자의 신분에 따른 의사소통의 장벽을 경험한다. 청각장애를 가진 일본 소녀 지에코(카쿠린 린코)는 타인과의 소통을 시도하지만 장애로 인한 소외감이 그를 자꾸 뒷걸음치게 한다. 어머니의 자살로 가족 관계에서도 소통을 찾지 못한 지에코가 느끼는 외로움은 극한에 달한다.
4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의사소통의 단절 또는 왜곡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중동 사람들은 모두 테러범이며, 16년간 모범적으로 살아왔어도 멕시코인 가정부는 한번만 삐끗하면 빈털터리로 강제 추방되어야 할 이방인일 뿐이다. 인파가 북적거리는 번잡한 도심에서 장애인은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
따로따로 전개되던 사건들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리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각기 다른 삶을 사는 등장인물들을 한 발의 총성으로 묶어 유기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감독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바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혼돈과 단절이지만 희망 또한 인간 안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통 속에서 발견한 희망은 더 값진 것임을, 영리한 감독은 그 의미를 십분 살려낸다.
윤성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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