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시오노 나나미 "로마의 세계지배 이유있다"

입력 : 2006-12-18 15:23:00 수정 : 2006-12-18 15:23: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로마인 이야기''15권 완간한 재이탈리아 일본인 작가 ■“로마의 세계지배 이유있다”
“기존의 로마사는 모두 유럽인에 의해 기독교 시각에서 쓰여졌습니다. 비기독교인, 비유럽인으로서 로마사를 쓴 건 아마 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책을 먼저 볼 수 있는 일본과 한국의 독자들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하나의 시각을 강요당했지만 이제는 선택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지금은 머리가 텅 빈 상태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년부터 매년 한 권씩 책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여름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겁니다. 내년엔 살짝 한국에 갈지도 모릅니다.”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다룬 대하 역사평설 ‘로마인 이야기’(일본 ‘시조사’, 한국 ‘한길사’ 펴냄)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69)가 15년이라는 장구한 집필 여정을 끝내고 12월 16일 도쿄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한국 기자를 만났다. 이날 자리는 그의 책을 국내 번역 출간해온 한길사 주최로 마련됐다. 한길사는 제15권을 다음달쯤 번역 출간한다.
회색 정장에 검은 테 안경을 쓰고 귀고리와 에메랄드빛 시계를 찬 채 밝은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 시오노 나나미는 두 시간 넘게 이어진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시종일관 진지하게 답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여기 오신 기자들 중 젊어 보이는 분들이 많은데 15년 전에는 몇 살이었냐”고 농담을 던지는 등 시종 분위기를 압도했다. 제1권을 펴내면서 매년 한 권씩 15년에 걸쳐 완결하겠다고 약속한 시오노는 “당연한 의무를 지키기 위해 집필 중심으로 생활했다”며 그동안의 집필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로마인 이야기’ 원고로 모두 200자 원고지 2만1000장을 썼다. 조정래의 ‘태백산맥’보다 많은 양이다. 그것도 모두 손으로 직접 썼다.
오랜 기간 집필에 매달린 이유에 대해 “종교도, 음식도, 민족도 다른 사람들이 공존공생했던 로마라는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민족이 다르더라도 역량이 뛰어나면 인재로 등용했던 로마인의 개방성을 통해 공생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의미다. 시오노는 하나의 종교만 믿는 일신교, 즉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세계가 된 중세 이후 양쪽 종교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면서 상대방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됐다며 “종교가 없던 때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를 생각한 것이 집필 계기가 됐다고 소개했다.
또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상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서로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하는 그는 한일관계에서도 마찬가지리고 단정했다. “이웃나라와는 전쟁만 안 나면 잘 되는 것”이라며 독도문제를 예로 들었다. 일본에서 ‘다케시마’, 한국에서 ‘독도’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양측의 역사인식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양국의 시선에서 문제를 분석한 책을 각자 만들어 바꿔 읽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시오노는 “종교적 열광과 민족주의 배제하고 냉정하게 타협점을 찾으면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린다”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의 입장에서 본 로마사만 있었으니 기독교를 믿지 않는 비유럽인이 쓴 자신의 책도 독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어와 한국어로만 출판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영어로 출간하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오노는 “다른 로마사 저서와 달리 나는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닌 로마 문명의 역사를 썼다”며 “마지막 권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을 넘어 지중해 수평선에 이슬람의 세계가 드리워진 7세기까지를 다룬 것도 로마제국의 멸망이 아닌 로마 문명의 종말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마지막 권을 쓰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냉정하게 볼 것이냐, 눈물을 흘리며 볼 것이냐를 고민했다”면서 “그 대상이 개인이 아닌 민족, 제국이라는 점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관점을 밝혔다.
로마제국의 흥망을 통해 들여다본 리더의 중요한 자질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조직 구성원을 생각할 줄 알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역량, 운, 시대와의 부합성을 리더의 3대 요건으로 꼽았다”면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시대에 맞지 않으면 리더가 되기 힘들며,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기개 즉 스스로에 대한 긍지가 국가 흥망의 요인이자 개인에게는 재기의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눈앞의 이익만 보고 본질은 인식하지 못한 채 수단이 목적이 되면 자멸한다고 경고했다. 작은 문제에 집착하면 큰 것을 놓쳐버리는데, 이로 인해 일본인에게 나타난 ‘나쁜’ 결과가 바로 ‘민족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카이사르처럼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현대국가에서 나올 수 있겠냐”는 질문에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사 나온다면 그건 불행한 말기적 현상”이라고 잘라말했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정치인들도 거론했다. “정치가는 정치를 해야 하고 역사가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 일본의 총리가 역사를 말할 필요는 없다. 아베 총리는 나처럼 유머 있는 화법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편이다. 열심히 하는데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을 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총리와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점을 꼭 조언하겠다.”
미국에 대해서는 화살을 겨누었다. “’팍스 로마나’가 로마인에 의한 세계질서를 뜻한다면 ‘팍스 아메리카나’는 미국인에 의한 독재 질서이며 미국은 진실로 세계 질서를 위하려는 의욕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나아가 “‘팍스 차이나’를 기대하기 어렵듯이 ‘팍스 아메리카’‘도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냐”며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를 구현할 의사도 능력도 없어보인다”고 손을 저었다.
앞으로는 알렉산더에 대해 기술하고 싶지만 “그가 지나온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이 분쟁지역이어서 가 볼 수가 없다”며 “밟아보지 않은 땅에 대해 쓰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로마에 관한 추수 집필 계획과 관련해서는 “아직 예정에 잡힌 게 없다”고 밝혔다.
“인간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대상이에요. 학자들은 권위가 떨어질까봐 역사를 재미있게 보려는 자세마저 거부했죠. 그 결과 그들이 쓴 역사는 재미가 없어요. 역사가 어렵다는 것은 결국 역사를 보는 그 인간이 어둡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보면 역사만큼 재미있는 게 없지요.”
다음은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책을 쓸 때 어떤 마음으로 썼나.
▲로마인이 좋아서 썼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냉정하게 보느냐, 눈물을 흘리며 보느냐에 고민했다. 그 대상이 개인이었으면 눈물을 흘리며 보겠지만 그게 하나의 민족이면 냉정할 수밖에 없다. 책 분량이 많은 것은 더 이상 로마에 대해 쓸 기회가 없으니까 여기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긴 세월을 로마사라는 한 곳에 몰두한 힘은 어디서 나온 건가.
▲일본인은 한다면 한다. 물론 요즘 일본인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1년에 한 권씩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병이 났다면 독자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겠지만 말한 것은 지켜야했다. 병은 병원에 가면 알겠지만, 모르면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닌가. 혹시나 해서 15년 동안 의사를 만나지 않았다. 지금은 몸속이 어떨진 몰라도 집필하는 동안 한 번도 안 아팠다는 게 다행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지금 병원에 가면 큰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 만약 발병했다면 독자들이 기다려줬을 것이라 생각한다. 완간도그만큼 늦어졌겠지만.
―일본어로 출간된 마지막 권은 꽤 두껍다.
▲맞습니다, 원고 분량이 꽤 된다. 더는 로마에 대해 쓸 기회가 없으니까 모든 걸 쏟아넣느라 좀 길어졌다. 15권 전체 분량은 200자 원고지 2만1000장이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모두 손으로 썼다.
-집필을 위해 라틴어까지 공부했다고 하는데.
▲라틴어는 고교 1학년 때 처음 접했다.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에 비해서는 장난 같아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당신의 삶과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역사를 비교하면 어떤가? 또 마지막 권 내용은?
▲프라이버시와 일을 연결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권은 로마제국의 멸망이 아니라 로마 문명의 종말이라 할 수 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는 하지만 거기서 정말 끝났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7세기를 끝으로 잡았다. 이것이 다른 로마사와 다른 점일 것이다. 내년 1월 말 또는 2월 초 한국에 번역 출간되면 이런 점에 유의해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한다. 나는 어느 나라의 역사가 아닌 로마문명의 역사를 썼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인으로서 로마문명사를 썼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로마사에 집착한 이유는.
▲로마인들은 자기들만 다 해먹으려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 중에서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국제감각을 로마인들은 이미 1500년 전에 가졌던 것이다. 피라미드는 굉장하지만 단 한 사람을, 그것도 죽은 다음을 위한 건축물 아닌가. 로마인들은 길이나 수도시설, 공회당 등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들을 만들었다. 로마는 또 ‘모든 사람은 다 생존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민족, 종교, 취향, 음식문화가 달라도 같이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공생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지금처럼 비관용으로, 서로 으르렁대는 세계가 배울 점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인류가 같이 살았던 한때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일본인은 그런 점에서 개방성이 부족하다고 보는가.
▲일본 역사 자체가 개방하고는 좀 무관한 것 같다. 일본인은 조금 영특해진 듯하다. 자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나라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점을 요즘에 와서야 조금 배운 것 같다. 지금 봐서는 일본인이 철저하게 어떤 민족을 미워하지는 않는 듯싶다.
-종교가 있는가, 독도 문제와 중국의 과거사 문제 등 아시아 3국의 역사갈등 해법이 있겠는가?
▲나는 일본인이 보통 갖고 있는 다신교를 믿는다. 아시아 3국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 이웃나라 하고는 잘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잘 되는 것이 이상하다. 이웃나라와 잘 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면 전쟁만 안 나면 잘된다고 봐야 한다. 예를 하나 들겠다. 책 한 권이 있다고 치자.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멋있는 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은 공유할 수 없다. 공유하려는 시도 자체가 시간과 돈을 버리는 행위다. 한국과 일본의 공유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그렇다. 독도 문제를 설명하겠다. 일본은 다케시마라 부르고, 한국은 독도라 부른다. 여기서부터 달라진다. 그렇다면 다케시마의 역사와 독도의 역사를 쓴 책 두 권이 있어야 한다. 두 권을 읽으면 상대방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다. 한 개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쪽이 훨씬 유익한 방법이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하나의 역사를 만들려고 노력해 봤자 무의미하다. 그 입장에서 나는 로마사를 썼다. 지금까지는 유럽권에 속한 기독교인이 쓴 로마사밖에 없었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유럽인이 아닌 시각으로 썼다. 영어 출간을 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로마의 멸망과 기독교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기독교의 역사적 공과를 설명하면.
▲한마디로 못해 제13∼15권에서 길게 그 이야기를 담았다. 기독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는 커지면 하나의 세력이 되고, 그러면 정치에 힘을 쓰게 된다. 그것이 나는 세계에 폐해를 줬다고 생각한다. 지금 서구는 온통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들 논엔 다른 종교는 마치 종교가 아니라는 것처럼 세계가 돌아간다. 종교적 긴장감이 없으면 물론 인간은 다른 긴장감을 찾게 될 것이지만…. 종교가 개입되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다케시마(독도) 같은 한일, 중일, 북일문제 모두 종교·민족주의를 배제하고 냉정하게 타협점을 찾으면 문제 해결이 쉬울 것입니다. 종교가 개입돼 있으면 문제 해결이 굉장히 어려워진다. 종교적 열광을 배제하고 내셔널리즘도 배제하고 냉정하게 타협점을 찾으면 문제가 쉽다. 종교에 비해 다케시마 문제는 쉽다. 일본과 한국 사이가 나빠져서 좋아할 곳은 중국밖에 없다. 중국 좋아하라고 우리가 으르렁거려야 하나.
-아우구스티누스를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지중해는 하나의 문명 속에 있는 바다, 세계 속의 바다였다. 7세기가 되면 기독교과 이슬람 세계가 커진다. 내 로마세계의 종말은 수평선상에서 이슬람의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지기 시작할 때다. 아마 이때부터 중세가 시작하지 않았을까. 다신교는 고대의 세계였지만 중세는 일신교의 세계, 즉,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세계였다.
-로마인 시리즈를 쓴 이유는.
▲모든 사람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태어난 이상 살아갈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얼굴과 민족은 달랐지만 공생이 가능했던 세계를 썼다. 종교, 생각, 옷 취향, 음식이 다른 사람들이 로마라는 세계 안에서 같이 모여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 만약 고대였다면 독도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함께 낚시하는 땅이 됐을 것이다. 지금은 일신교로 인해 서로 비(非)관용적으로 으르렁거리는 세계가 됐다. 비관용이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책에서는 역사의 위기와 극복이 반복된다. 로마가 어떤 경우에 번영하고 쇠퇴했나.
▲정신력이 강한 민족에게 위기가 찾아오면 그들은 그것을 극복한다. 그럴 때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기개가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긍지다. 이것이 번영과 쇠퇴의 요인이다. 가장 나쁜 상태는 재기할 힘이 없어졌을 때다. 아직 힘도 있고 정신력도 있는데 눈앞의 이익만 보고 문제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다. 나는 이것을 ‘수단의 목적화’라 생각한다.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가 길지 못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스, 아테네 등이 여력이 있었는데도 자폭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멸망했다. 작은 문제에 집착하면 큰 것을 놓친다. 일본인에게서 이런 경우가 나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작은 의미로서의 ‘내셔널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리더로서의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보통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을 하고 노력하는 게 당연하지만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리더는 다른 사람까지 생각해야 한다. 리더는 리더가 된 조직의 모든 구성원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일본어 표현을 빌리면 ‘지도자는 자기 뱃속을 채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거대한 저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로마에선 개인 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 거의 다 공공의 유적이다. 업적을 올리고 싶으면 공공의 건물을 기증함으로써 자신을 알렸다. 지도자가 자기 뱃속 채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 공중을 위해 일했다는 증거이다. 로마가 1000년 동안 유지된 또 다른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로마인들의 이런 생각이 좋다.
-케이사르처럼 강력한 권력 가진 지도자가 현대민족 국가에서도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한국과 일본의 체제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는 건 불가능하다. 혹시 나왔다면 말기적, 절망적 상황이 아닐까. 아직 절망상태는 아니라고 본다.
-역사의 오락성을 강조해왔는데.
▲보통 사람들은 역사가 어렵다고 말한다. 역사가 어렵다는 것은 인간에 어둡다는 것이다.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다. 이제까지 학자들이 재미있다고 말하면 권위가 떨어지니까 재미있게 보려는 그 자세마저 거부했다. 그 결과 그들이 쓰는 역사는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독자도 재미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역사를 정치인들이 말하곤 한다. 역사와 현실정치의 관계에 대한 의견은.
▲정치가는 정치를 하면 되고 역사가는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게 좋다. 왜 정치가에게 역사를 묻지 않으면 안 되나. 우리가 얘기하면 되지 않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정치와는 질이 틀리다. 역사는 여러분이 말하면 되지 여러분의 대통령이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아베 신조 총리가 나처럼 유머를 포함해 도발적으로 말하는 화법을 잘 못하는 편이다. 열심히 하려 하는데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을 뿐이다. 내가 만일 총리와 친구가 된다면 이 점을 조언하겠다.
-이제 로마와 관련된 글은 안 쓰나. 이전에 알렉산더를 쓰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로마와 관련된 글은 현재 예정에 잡혀 있지 않다. 생각도 안 해봤다. 지금까지 알려진 알렉산더의 다른 부분을 썼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그가 지나긴 길은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인데, 모두가 전쟁이 나고 있는 지역이어서 가질 못 한다.
가 보지 않은 땅을 쓰기란 어렵다.
―언젠가 ‘로마인 이야기’를 끝내면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는데.
▲물론 관심이 많다. 알렉산더대왕에 대해선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내용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가 거쳐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이 모두 전쟁상태라 가 볼 수 없고,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쓸 수는 없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좀 ‘얌전한 남자’ 이야기를 쓰고 싶다.
-유능한 지도자와 국가의 흥망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리더에게 필요한 3개 요건을 역량, 운, 시대에 맞는가를 꼽았다. 네로처럼 최악의 황제는 다들 싫어했지만 그의 외교와 정치는 후세에 영향을 끼쳤다. 제국의 흥성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으면 존경받지 못한다.
-로마인 시리즈를 쓰게 된 계기는.
▲그동안 지속해온 사상으로는 세계가 이대로 못 가겠다 생각했다. 지금도 인간 생활은 별로 좋아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종교가 없었을 땐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생각, 사고방식, 습관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패밀리처럼 살아나올 수 있었을까를 쓰고 싶었다. 그것은 평화였다. 지금은 평화가 아니다.
-미국의 국제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팍스 로마나는 로마인에 의한 세계질서였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미국인에 의한 독재질서가 아니면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 참다운 의미의 의욕이나 각오는 없다. 패권 헤게모니와 평화는 다르다.
-최근 취임한 유엔 사무총장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그 어려운 자리에 오른 걸 동정하고 싶다.
-로마가 멸망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한마디로 못하니까 이만큼 썼다. 내 책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옛날에 이런 민족이 있었다고 얘기할 뿐이다. 작은 문제라도 서로 해결점을 찾아 노력해가자. 빨리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 일본에 오면 너무 바쁘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일본인, 한국인 독자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도 문제의 해결책을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옛날에 이런 민족이 있었다는 얘기만 했을 뿐입니다. 읽고 나서 여러분 각자가 생각해 주십시오. 제 책은 어렵기 때문에 머리가 좋은 독자들이 주로 봅니다.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는 얘길 듣고 한국인의 지능에 신뢰를 갖습니다. 일본에서도 이 책이 어느 정도 읽혀지기 때문에 한일 간 문제도 이성과 신뢰로 노력한다면 잘 해결되리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쿄=조정진 기자 jjj@segye.com
■시오노 나나미는 누구인가=“지금 난 자신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으면서 아름다운 천을 만들어 갔던 전설 속의 여인 ‘쓰’(津)와 같다. 다시 날개가 돋아날 때까지 푹 쉬고 싶다.” 로마 1000년 역사의 대서사시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한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69)가 15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한 말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이 책에 쏟아 부었다는 얘기다. 그는 연년생으로 자식을 낳듯 15년 동안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매년 한 권씩 뽑아냈다. 1992년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에서 시작해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시리즈는 14권까지 일본에서만 540만 부가 팔렸고, 한길사에서 번역 출간한 한국에서도 200만부나 팔려나갔다. 시오노는 15권을 쓰는 내내 이탈리아에 머물며 1년의 절반은 자료 수집 및 정독, 나머지 절반은 집필에 매달려 왔다.
그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63년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을 졸업했다. 고교 시절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 라틴어를 배워뒀다. 도쿄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뒤 가쿠슈인 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 서양철학을 전공하면서 학생운동에 가담했지만 마키아벨리를 책으로 만나면서 이념운동에 회의를 느껴 그만뒀으며, 졸업 뒤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잡지사 기자로 아르카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다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시칠리아 귀족 출신인 의사와 결혼 영화감독 지망생인 1남을 두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30년 넘게 로마사를 연구한 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로 알려진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70년 마이니치 출판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집필실 책상도 마키아벨리가 쓰던 것을 모방 복원해 만들었을 정도로 마키아벨리에 심취해 있다. 축구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영화광이기도 하다.

조정진 기자

오피니언

포토

신예은 '매력적인 손하트'
  • 신예은 '매력적인 손하트'
  • 김다미 '깜찍한 볼하트'
  • 문채원 '아름다운 미소'
  • 박지현 '아름다운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