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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 "내 관심사는 늘 주변부 삶"

입력 : 2006-12-06 13:51:00 수정 : 2006-12-06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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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행인두부의 마음’ 연출을 위해 내한한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49)씨. 지난 2일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정씨가 내민 명함에는 ‘C2’라는 이름이 선명히 새겨 있었다. 재일교포 영화감독 최양일과 정의신의 영문 이니셜 약자를 뜻하는 ‘C2’는 그가 해온 영화작업을 상기시킨다. ‘피와 뼈’ ‘달은 어디에 떴을까’ ‘개 달리다’ 등 최 감독과 함께해 온 필모그라피로 유명한 정씨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연극 뮤지컬 오페라를 넘나드는 멀티 플레이어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1989년 동숭아트홀 개관 공연 ‘천년의 고독’과 93년 ‘인어전설’ 등으로 국내 관객에도 호평받아온 그의 이번 작품은 일본과 한국 팀에 의해 번갈아 공연된다. 작가가 직접 연출하는 공연은 6∼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지난해 ‘현대 일본 희곡 낭독공연’에서 이 작품을 소개한 중견 연출가 기국서와 ‘극단 76’이 바통을 이어받아 8∼31일 대학로 스튜디오 76에서 공연한다.

‘행인두부…’는 집안일 하는 남편과 직장생활하는 아내의 이야기. 7년차 부부가 성탄 전야 행인두부를 나눠 먹으며 상처투성이 기억과 화해하고 서로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행인두부는 일본사람들이 편의점에서 쉽게 사서 먹는 디저트예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으며 축하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도시 남녀의 모습을 비춰 내는 상징인 셈이죠.”
재일교포의 광적인 삶을 그린 ‘피와 뼈’와는 사뭇 다른 서정적인 느낌이 의외였다. 그러나 정씨는 “집안일 하는 남편은 아직까지 우리사회 마이너리티라는 점에서 재일교포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재일교포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 인근 히메지 출신의 재일교포 2.5세대. “재일교포라서 차별받거나 어려웠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각국의 예술가들과 작업할 때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를 섞어서 소통하면서 재일교포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의 접경에 놓여 있다는 것은 풍부한 재산이거든요.”
동네 영화관 등의 폐품 수집일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 영화관을 공짜로 드나들던 정씨는 쇼치쿠 영화사에서 영화미술 조수로 출발했다. 이후 일본의 실험극단 ‘블랙텐트’로 연극계에 입문한 그는 첫 희곡 ‘사랑하는 메디아’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기시다 희곡상 후보에 올랐다.
신주쿠 양산박 창단멤버인 그는 현재 일본 오페라단 ‘곤야쿠좌’와 뮤지컬 극단 ‘와라비좌’에서도 극작과 작사를 맡고 있다. “오페라 작업을 할 때도 제 관심사는 늘 주변부의 삶에 머무르는 것 같아요. 오페라에서도 ‘고장나기 직전의 로봇’이나 ‘인간이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인간’ 이야기를 했지요.”
2007년도 여전히 그는 바쁘다. 당장 NHK의 신년 특집 드라마의 대본을 맡았고, ‘행인두부의 마음’이 홍콩에서 홍콩배우와 연출에 의해 올려진다. 내년 봄 일본 신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이 한일 양국에서 번갈아 올리는 공동제작 공연에도 정의신씨 작품이 선정된 상태다. 또 지난 11월 일본과 필리핀 교류 60주년을 기념해 필리핀 국립극장 초청을 받아 자신이 쓴 뮤지컬 ‘바케레타’를 연출한 그는 이 작품을 2년 뒤 한국에서 한국 스태프와 올릴 예정이다.
최양일 감독과 제주 4·3항쟁을 다룬 ‘까마귀의 죽음’ 영화화를 위해 제주도 현장을 돌아보기도 한 그는 “제주 항쟁 희생자들을 만나면서 개인과 역사의 관계성에 천착해야 하는 작가의 사명을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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