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소유욕에 갇힌 사랑을…/
집착과 소유욕에 갇힌 사랑을…
구스타브 모로 作-헤롯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 상징주의,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회화의 길을 연 구스타브 모로는 이탈리아에 유학해 르네상스 회화를 공부한 뒤 줄곧 신화나 성서에서 소재를 딴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그림을 그렸다. 면밀한 구성, 정밀하고 자세한 묘사, 광택 있는 색채의 약동으로 상징적이고 탐미적인 표현세계를 구축했다.
‘헤롯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는 모로의 ‘살로메 시리즈’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작품으로, 화면을 거칠고 두텁게 표현한 그의 후기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로메는 헤롯 왕의 왕비인 헤로디아의 딸이다. 헤롯은 자신의 생일 축하연에서 아름다운 춤을 춘 살로메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했고, 어미의 사주를 받은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을 청해 이를 얻어낸다. 요한은 헤롯이 형수 헤로디아를 취한 일이 율법과 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소리 높여 비난한 죄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이 일화는 예술가들의 흥미를 자극해 와일드의 시,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등 다양한 예술작품의 소재가 됐다. 그런데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선 내용이 이와 좀 다르다.
살로메는 첫눈에 요한을 사랑했는데, 순례자 요한은 요사스런 살로메의 유혹을 거절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살로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한을 소유하기로 작정, 그의 목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극 속에서 살로메는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정염의 춤을 추는 악의 꽃으로 표현된다.
헤롯은 자신의 양녀인 살로메를 바라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일곱 베일의 춤’을 보았으니, 아마 이성까지 잃었을 것이다. 헤롯의 혼을 쏙 빼놓은 살로메의 춤은 중동 지방 배꼽춤의 일종으로, 일곱 베일을 차례로 벗으며 추는 일종의 스트립 댄스로 추정된다. 와일드의 희곡을 슈트라우스가 오페라로 만들어 개봉할 당시 ‘일곱 베일의 춤’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 그림은 살로메가 일곱 베일의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것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잘 짜인 구도와 밀집된 효과물들이 어우러져도 산만치 않고 신비로우면서도 차분한 화면을 이루고 있다. 욕망이 담긴 배경과는 달리 이 그림이 오히려 정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요한의 죽음을 암시하는 탓이 아닐까 싶다.
와일드의 극 중에서 잘린 요한의 머리에 정열적인 키스를 퍼부으며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살로메. 그러나 극 속의 그녀 역시 정신을 차린 헤롯의 명령에 따라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사랑을 갖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집착과 소유욕에 갇힌 사랑을 어찌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육체의 사랑일 따름이다.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랑과 소유를 혼동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다. 이 가을, 사랑과 소유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시 한 편을 권하고 싶다.
“사랑과 소유에 대하여 혼동하지 마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소유의 본질은 고통이다.”(이상각 시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에서)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www.breast.co.kr)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