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는 ‘사랑의 삼원칙’을 주제로 한다. ‘미안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잘하자는 것이다. 우스꽝스럽지만 부부간에 가장 듣기 어려운 말이니 일리가 있다. 이 말들만 잘해도 부부싸움은 물론 공처가 신세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소식을 접하며 고대의 유명한 공처가 소크라테스가 떠올라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그러다 엉뚱하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하는 희한한 그림 하나를 접했는데, 글쎄 이 유명한 철학자가 웬 여인을 등에 태우고 엉금엉금 기어가며 채찍을 맞고 있는 게 아닌가.
한스 발둥 그리엔의 목판화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라는 작품이다. 고고한 철학자가 아름다운 창부 필리스의 말이 되었다는 우화를 조롱하듯 표현하고 있다.
당대뿐 아니라 지금도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벌거벗은 채 재갈을 물고 채찍을 맞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더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대표적인 남성우월론자로, 성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수컷이 암컷보다 월등하다’, ‘남성은 태양, 여성은 대지’, ‘남성은 목수, 여성은 나무’ 등등 그가 남긴 관련 어록만으로도 책 한 권은 나올 성싶다. 그런 그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위풍당당한 필리스와 달리 노쇠한 알몸을 드러내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애처롭다. 남자의 입장으로 보자니 자존심을 어디다 버린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혹자는 이 그림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성 정체성, 즉 마조히즘을 보여준다 해석하니 더더욱 께름칙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존경해온 사람으로서, 이보다는 노철학자의 이면에 숨겨진 한 노인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필리스는 당시 창부의 최고 레벨이었던 ‘헤타이라’였다. 헤타이라는 뛰어난 외모와 더불어 지성과 교양을 갖춰야만 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을 때까지 그런 필리스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무슨 요구든 거역하지 않았다 하니 그야말로 사랑 앞에 모든 것을 버린 한 남자가 아니고 무엇일까. 여성에 대한 공격적 폄하를 일삼은 그였지만, 어쩌면 심중에는 다른 평범한 이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강인한 철학자를 말처럼 부린 필리스를 보며 여성이 가진 지성과 교양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광고 문구의 방증이 아니겠는가.
비록 정부인은 아니었으나, 평생 여성 폄하를 일삼았던 남성을 공처가로 만든 여성 필리스. 역할이 바뀌었지만 ‘폭군남편협회’는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를 무너뜨린 필리스가 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했다. 지성과 교양을 갖춘 말 한마디가 이성의 태도를 바꾸는 핵심 매력일 수 있음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www.brea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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