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상속녀와 결혼…4년뒤 셋째 임신 알고도 이혼" 내달 퇴임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시스터 콤플렉스’에 빠진 ‘비정한 꼭두각시 총리’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프리랜서 언론인 마쓰다 겐야(松田賢▲)가 쓴 ‘비정한 총리 고이즈미’(주혜란 옮김, 파미르)는 1972년 중의원의원에 첫 당선 후 12선의 국회의원을 지냈고, 2001년 총리에 오른 후 연이어 3차례 연임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베일에 쌓인 가족사를 중심으로 그의 정체를 폭로한다. 저자에 의하면 고이즈미 총리는 2004년 자국민이 아라크에서 반군에 피랍됐을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해 비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쓰다 겐야가 고이즈미의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은 고이즈미가 총리가 된 직후부터였다. 그것은 백발이 희끗희끗한 초로의 중년 여성이 던진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 집은 옛날부터 피로 똘똘 뭉쳐진 집안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지요.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 집을 존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피와 피로 얽힌 순혈주의 신봉자들로, 정치가 집안의 맥을 잇고자 고이즈미를 위해 식구들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던 모계가족입니다. 그 중에서도 고이즈미의 바로 손위 누나인 노부코(信子)는 고이즈미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여제(女帝)’로까지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 여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준이치로는 없습니다….”
고이즈미도 막 정치에 입문했을 때 “나는 누나가 없었다면 정치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해왔다. 노부코는 언제나 동생 준이치로와 함께였다. 노부코는 고이즈미가 편히 쉴 수 있는 엄마이자 스승 같은 존재였다. 그가 없으면 고이즈미의 하루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서 노부토의 거처도 총리 공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 언론은 노부코에 대해 한 줄도 쓰지 않는다.
셋째 누나인 노부코는 고이즈미가 중의원 의원에 초선 당선한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의 비서관이다. 노부코는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純也) 의원의 비서로 일 해왔고, 아버지가 1964년 방위청 장관에 취임하자 여성으로선 일본 최초의 장관 비서관이 됐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영국 유학 중이던 동생 준이치로를 불러들여 ‘가업’인 정치인의 길을 잇게 했다. 그는 고이즈미에게 가장 영향력이 강한 정치적 조언자이자 집안 살림을 알뜰히 챙기는 내조자이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총리 관저에 초대를 받으면 반드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존재다. 이혼한 고이즈미 총리는 누나를 마음의 안식처로 삼아 전적으로 의지해 왔다. 노부코 역시 독신으로 살아왔다.
고이즈미와 노부코의 관계를 추적한 저자는 ‘고이즈미는 무대에 올려진 꼭두각시 인형’과 같고 그 이면에서 노부코가 제왕처럼 있다고 결론지었다. 중요 정책 결정을 할 때도 고이즈미는 노부코에게 달려가 묻고 그가 코치하는 대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부코가 전면에 나서는 법은 없다. 오로지 그림자처럼 뒤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저자는 고이즈미의 실패한 가정생활도 낱낱이 파헤쳤다. 고이즈미는 28년 전 14살 아래의 여대생 미야모토 가요코(宮本佳代子)와 결혼했으나 4년 만에 이혼했다. 가요코는 일본 거대 제약회사 ‘에스에스제약’ 창업자인 다이도 쇼잔((泰道照山)의 손녀딸로, 재벌가의 상속녀였다. 저자는 따라서 결혼의 이면에는 정치자금을 기대한 가난한 정치가의 야망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결혼 당시 가요코의 태중에는 모델로 활동하는 장남 고타로(孝太郞)가 있었다. 그 후 둘째 아들을 낳고, 4년 후 이혼 당시에는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을 했고,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숨겨오고 있다. 고이즈미의 두 아들은 강요 속에 고모를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가요코는 침묵한 채 셋째 아들 요시나가(佳長)를 키웠다. 요시나가는 고이즈미의 하코네 요양소는 물론 할머니의 장례식, 선거 유세에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비서관의 제지와 비정한 아버지의 무시로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이제 고이즈미의 시대도 채 한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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