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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빈, 파이팅! 뮤직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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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사나이! 성인가요차트 방송횟수 1위! 트로트계의 신형 엔진!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성악도의 꿈을 포기하고 트로트에 도전한 신인가수 박현빈. 데뷔 4개월 만에 그는 벌써 밀려드는 스케줄로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를 행복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자신에게 ‘음악’을 선물해준 부모님과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형. 박현빈은 연주가로 활동하던 부모님의 밑에서 자라났고 성악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중인 형에게 영향을 받았다. SW는 박현빈과 그의 가족들을 만나 트로트 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박현빈의 성장 스토리와 가족들의 화목한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1982년생 박현빈(본명 박지웅)은 5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며 자랐다.
“어릴 때야 부모님께서 시키니까 무조건 한 거죠. 싫고 좋고의 개념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이 가수를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20년 이상 배운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박현빈에게 가장 큰 재산이다. 음악에 대한 감이 트였고 음정을 잡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젊은 시절, 소위 ‘언더’에서 밴드 활동을 한 이래 지금까지도 음악인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박현빈의 부모는 ‘악기를 아는 것이 곧 음악을 아는 것’이라며 어린 두 아들에게 악기를 가르쳤다. 박현빈 부모는 성악가인 현빈의 형 지수씨에게 6살 때부터 피아노와 플루트를 가르쳤다.
“성악을 전공하게 된 건 형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2남 중 동생인 박현빈은 2년 터울의 형이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것을 보며 자신도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이후 추계예술대학교 음악학부에 입학, 성악 전공을 선택한 그는 대학연합 합창단에서 형과 함께 활동을 하는 등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악을 전공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노래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박현빈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주위에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통했다. 박현빈은 “음악시간이 되면 언제나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내 노래 시범을 보이게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반 대항 장기자랑 때도 언제나 노래는 박현빈의 몫이었을 정도.
대학 1학년을 마친 박현빈은 공군 군악대에 자원 입대했다. 기간은 조금 길지만 군에서도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입대는 박현빈을 변화시켰다. 성악병이었지만 여러 무대 위에 오르면서 트로트, 힙합, 댄스, 팝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그런데 박현빈의 노래를 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트로트가 어울린다는 소리를 계속 듣게 됐다.
“군대에 다녀와서 진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주위에서 트로트를 잘한다는 얘기들을 하셨고, 사실 저도 트로트를 부를 때가 제일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됐어요.”
제대 후 학교에 복학했지만 박현빈은 더이상 고민할 것 없이 곧바로 휴학계를 냈다. 대중음악, 그것도 트로트 가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시절 장학생으로 선발될 만큼 성악에 재능을 보였던 터라 주위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박현빈의 강한 의지는 그 누구도 꺾지 못했다.
박현빈이 본격적으로 트로트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빠라빠빠’의 작곡가 정의송을 만나면서부터. 지인의 소개로 정 작곡가를 만난 그는 이후 1년 동안 초강도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트로트 가수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 작곡가는 박현빈을 ‘남자 장윤정’감으로 ‘찜’하고 그를 장윤정의 소속사인 인우프로덕션에 소개했고, 오늘날 ‘트로트 신형 엔진’ 박현빈이 탄생하게 됐다.
‘박현빈’이란 예명은 당시 인기가 높았던 탤런트 ‘현빈’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가요계에서 현빈과 같은 파란을 일으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빠라빠빠’를 부른 데모 CD를 인우프로덕션 홍익선 대표에게 보내드렸는데 소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찾아 뵜어요. 절 직접 보신 대표님은 무척 만족해 하셨어요. 저에게 노래도 시키지 않고 곧바로 계약을 하자고 하시는 거에요. 아마 제가 군대를 다녀왔다고 하니까 그게 마음에 드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그 후 이들은 일사천리로 음반을 내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당시 바로 며칠 앞으로 다가온 ‘독일 월드컵’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인우프로덕션은 마케팅이 무척 강했어요. 체계적이었지요. 성인가수가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선 1년∼3년이 소요되는데 ‘월드컵’을 적절히 활용할 경우엔 단 몇개월만에도 ‘한국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의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타이틀곡인 ‘빠라빠빠’를 ‘월드컵 버전응원곡’으로 바꿔 각 응원행사에 참가했고, TV의 월드컵 특집쇼에도 나갔어요.”
실제로 박현빈은 요즘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니 이름은 몰라도 ‘빠라빠빠’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거에요. ‘빠라빠빠’ 때는 너무 정신없이 나와서 부족한 면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보다 신중하게,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겁니다.”
그는 앞으로 정규 1집 활동에 들어간다. 타이틀곡은 신나는 트로트 댄스곡 ‘곤드레 만드레’. “그 노래 안에 인생이 있고, 삶이 있다”고 박현빈은 말한다.
아직도 앳된 얼굴이지만 하고자 하는 열의만은 한국 최고인 박현빈. 올 가을에는 박현빈의 성공시대를 보게 될 것 같다.

글 홍동희, 사진 김창규 기자 mystar@sportsworldi.com


●가족들이 말하는 박현빈
트로트라 놀랐지만 음악재능 타고 났다


노래강사 어머니(정성을·49)와 색소폰 연주자인 아버지(박원·51) 그리고 경희대학교 성악과를 나와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형(박지수·27)까지. 신인 가수 박현빈의 가족 구성원은 ‘음악’을 떼고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지만 아들 둘에게 모두 음악을 가르친 어머니 정성을씨는 일찌감치 자녀의 음악적 재능을 파악했던 것.
정씨는 “현빈이 외할아버지께서도 고등학교 음악교사를 지냈다”며 가족들의 음악적 재능이 우연이 아님을 강조했다.
결혼 전부터 밴드 활동을 했고, 지금은 전국가요강사협회 부회장으로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 정씨는 “현빈이가 월드컵과 맞물려 단시간에 떠오른 것 같다”며 “무명 시절의 어려움을 꼭 겪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현빈이가 인간관계를 잘 쌓을 수 있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 꿈을 꼭 이루겠지만 끝까지 겸손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클래식을 공부하다 갑작스레 트로트를 하겠다고 나선 아들이 잠시 야속하기도 했다는 아버지 박원씨는 “트로트야 조금 더 나이 먹고 해도 되는데 어린 나이에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반대를 했다”며 “지금은 누구보다 응원하고 있다. 처음 가졌던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 아버지는 남몰래 아들을 위해 멋진 트로트곡을 작곡해 두었단다. 아버지의 바람은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서 아들에게 그 곡들을 선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유학중 동생의 트로트 가수 변신 소식을 접한 형 지수씨는 “현빈이가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예뻤고 바이올린을 오래 해서 그런지 음정이 정확했다”며 “날카로운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가족밖에 없다. 개인적인 입장에선 조금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현빈네 가족은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것은 모두 모여 작은 가족 음악회를 여는 것.
박현빈은 “부모님과 형이랑 가족 음악회 얘기를 자주 한다”며 “기회가 되면 꼭 저희 가족의 음악 실력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이길상 기자
jun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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