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람난 이야기는 신들의 시대에서부터 유래하는 것 같다. 얼굴도 잘 생겼지, 몸매도 한 몸매하지, 게다가 남자다운 박력도 있겠다, 아주 이상적인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사냥에 심취하여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아침부터 사냥을 나서곤 했다. 마침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처음으로 지상에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이 젊은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그를 보는 순간 그녀는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이 일었다.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 젊은이를 납치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케팔로스는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는 시기였으니,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에게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프로크리스로 그는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 프로크리스는 수렵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프로그리스에게 아주 소중한 두 가지 선물을 주었으니, 어떤 개보다도 빨리 달리는 개 한 마리, 그리고 어떠한 표적이든 백발백중 맞추는 투창이었다. 프로크리스는 여신에게 받은 이 소중한 두 가지 선물을 남편 케팔로스에게 주었다. 케팔로스는 그날부터 투창을 들고, 개를 데리고 다니며 사냥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어느 부부보다도 다정했으며, 서로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차에 에오스라는 여신이 그를 납치한 것이었다. 에오스는 그를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그는 에오스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자가 저주를 하면 온 유월에도 서리가 온다.’는 말이 있듯이 질투를 느낀 에오스는 결국 화가 나서 그를 저주하며 욕을 퍼부었다.
“어서 꺼져버려. 이 배은망덕한 놈, 네 마누라나 잘 모셔라. 나쁜 새끼! 내가 네 놈이 네 마누라한테 돌아간 걸 후회하며 땅을 치게 해주고 말 것이야.”
에오스에게 풀려난 케팔로스는 꾹 참고, 이마에 땀을 닦고는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전과 다름없이 아내를 사랑해 주며, 사냥을 즐기곤 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을 나와 숲 속을 뛰어다니고, 언덕을 넘어가며 사냥을 즐겼다. 그는 사냥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어떤 사냥감이든 나타나기만 하면 그가 던지는 창은 여지없이 명중하였으므로 사냥하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다. 그렇게 사냥에 푹 빠져 돌아다니다 보면 몸이 지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냇가를 찾아가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물가 나무그늘에 눕는다. 그가 웃옷을 벗고 시원한 그늘에 누어있노라면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기분을 아주 좋게 만든다. 그러면 그는 누운 다정하게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이 바람을 향해 외치곤 한다.
“오! 감미로운 바람! 어서 와서 내 가슴에 부채질을 해주렴. 이리 와서, 나를 불태우는 열을 식혀주렴.”
이날도 평소처럼 그는 이렇게 바람과 속삭이며 누어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나가던 사람은 케팔로스가 감미로운 바람이란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 비밀 스러운 일을 혼자 알고 있기에는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 비밀을 케팔로스의 아내 프로크리스에게 가서 그대로 전했다. 그토록 믿었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프로그리스는 너무나 기가 막혀 기절하고 말았다. 한참 만에 깨어난 그녀는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사냥하러 다닌답시고 하루 종일 나가 있는 남편이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언제나 다정하고, 잘 해주는 남편이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생각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자기 눈으로 그 광경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돌아왔지만 그녀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단지 프로크리스는 가슴을 조이며 다음날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케팔로스는 여전히 사냥을 나간다. 그러자 그녀는 몰래 그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었던 사람이 알려준 장소에 가서 몸을 숨기고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리는 순간은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가 정말로 바람과 사랑을 나누게 되면 자기의 신세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케팔로스는 사냥에 지치자 늘 하던 대로 그 냇가 남 그늘아래 풀 위에 벌렁 드러눕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가 전해 들었던 속삭임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이었다.
“오! 감미로운 바람이여, 어서 와서 나에게 부채질을 하여다오.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잘 알지. 네가 있기 때문에 술도, 나의 외로운 산보도 즐겁단다.”
그가 그렇게 바람과 속삭이고 있을 때, 갑자기 숲 속에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순간 그는 야수가 아닌가 생각하고 소리 나는 곳을 향해서 창을 힘껏 던졌다. 알 수 없는 외마디 소리가 들려오자, 그가 던진 창이 표적을 정확히 맞혔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기쁨에 차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뿔사 그가 그 장소로 달려가서 본 광경은 너무나 기막힌 광경이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프로크리스가 피를 흘리면서, 그가 던진 창을 있는 힘을 다해서 상처에서 빼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남편에게 주었던 바로 그 선물인 창에 그녀가 결국 찔리고 말다니!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할말을 잃은 그는 멍하니 있다가 그녀를 안아 일으키고 출혈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정신 차려. 나를 두고 죽으면 안돼. 정신 차리란 말야.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해. 내가 당신을 찌르다니. 다 내 잘못이지만 제발 죽지는 말아줘.”
그가 애처롭게 울부짖으며, 그녀를 흔들어 대자, 그녀는 살포시 눈을 뜨고, 간신히 마지막 말을 했다.
“여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만일 내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제발 내 마지막 소원을 들어 줘요. 제발 그 얄미운 미풍이란 년과는 결혼하지 말아요.”
그제야 케팔로스는 그간에 일어난 일의 내막을 알게 되고는 흐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름다운 바람이란 말을 여자로 알아듣다니!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받은 소중한 선물로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다니!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호롱불처럼 아스라한 그녀의 목숨 앞에서 자기가 속삭였던 말에 아내가 오해했었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사랑담긴 얼굴로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부터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속삭이는 사람을 바람난 사람이라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바람, 더운 날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바람이나, 농부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고 있을 때, 그의 이마를 향해 부는 바람이야말로 참으로 감미로운 바람 아니던가. 이 바람인지, 그 바람인지 잘 확인하고 오해하지 말 일이다. 오늘도 여전히 바람은 불고, 오늘도 여전히 어디선가는 바람도 날 것이다. 다음 주 에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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