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아들까지 정치범 낙인… 학업중단 한맺혀"

입력 : 2006-05-03 17:02:00 수정 : 2006-05-03 17:02: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미국으로 간 탈북자들]③ <끝> 이순옥·최동철씨 母子 미국 워싱턴이 북한 인권운동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달 중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황장엽)의 워싱턴 대표부 사무실이 정식 개소한다. 제법 큰 빌딩에 사무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달 22∼30일 ‘북한자유주간’에는 탈북자 5명이 상ㆍ하원에서 증언했다. 미국자유북한방송은 지난달 27일 하원에서 방송시간 확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같은 일련의 대북 인권활동 막후에 탈북자 이순옥(60)씨가 있다. 한국에서 황장엽씨와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가 탈북자들을 선정해서 보내면 디펜스포럼의 수전 솔티 대표가 이들의 의회 증언 등 미국 무대에 세우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서 비용을 대고 다리를 놓고, 뒷바라지하는 사람이 이씨와 아들 최동철(39)씨다.
1995년 탈북한 이씨는 이듬해 정치범수용소 실태를 폭로한 저서를 발간했다. 이씨가 세계일보 남북평화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쓴 ‘증언:꼬리없는 짐승들의 눈빛’은 대박을 터뜨렸다.
같은해 일어판이 나왔고, 1997년 영문판, 2000년 독일어판, 2001년 프랑스어판이 발간됐다. 인터넷 도서판매업체 아마존 닷컴에서 별 5개가 붙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서가 인기리에 판매되면서 이씨는 유명인사가 됐다. 이씨는 1997∼99년 미국 방송과 의회 등에서 수십차례 증언했다. 유럽연합(EU) 의회에서도 두차례나 북한 인권 실상에 대해 증언했다.
평양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한 인텔리 출신인 이씨는 북한에서 ‘북부지구물자공급소’ 소장을 하다가 상납을 하지 않는다고 숙청대상이 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김일성종합대를 다니던 아들 최씨는 졸지에 학교에서 쫓겨나 강제노동을 했다. 겨우 사형을 모면한 이씨는 자신의 정치적 박해 때문에 아들이 겪은 학업 중단이 한으로 남았다고 한다. 1996년 1월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탈북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의 답변은 의외였다. “아들에게 못다한 공부를 다시 시키기 위해 남으로 왔습네다!” 결국 아들 최씨는 한국외국어대 중문과를 편입, 졸업했다. 이후 이씨는 2003년 취업비자로 미국에 정착했다. 버지니아서 영어를 배우고 있는 최씨는 MBA과정 입학을 준비 중이다.
이들 모자는 한국 정부만큼 탈북자들에 대해 잘 대해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가 탈북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증언을 하고 북한 문제에 대해 떠들어댈 때 북한의 신변위협에서 보호해준 사람들이 늘 따라다니던 정보기관 요원들이었다”며 “탈북자들에게 정착금에다 의료보험, 기초생활비, 대학까지 무료교육시켜 주는 곳은 대한민국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2004년 버지니아주에 ‘북한선교전략연구소’를 설립해 공산권 선교단체인 ‘오픈도어스’ ‘순교자의 목소리’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워싱턴 대표를 맡고 있는 최씨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 개소와 함께 군사 및 북한인권 전문가를 초빙해 북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워싱턴 싱크탱크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며 “세미나·포럼 형식을 통해 북한 민주화 여론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한용걸 특파원
icykarl@segye.com

오피니언

포토

원지안 '청순 대명사'
  • 원지안 '청순 대명사'
  • 이효리, 요가원 수강생 실물 후기 쏟아져…
  • 엔믹스 해원 '눈부신 미모'
  • 박한별, 남편 논란 딛고 여유 만끽…여전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