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잃고도 왕을 조롱하던 광대 장생 감우성. 관객들을 ‘왕의 남자’ 신화 속에 빠뜨려 놓고 그는 어느새 멀찌감치 달아나 있다. 이번엔 이혼남으로 변신한 이 시대의 광대 감우성은 하루 300쌍이 넘게 이혼하는 한국 사회의 풍속도를 보여준다. 오는 27일부터 방영되는 SBS 멜로드라마 ‘연애시대’에서다. “‘왕의 남자’를 빨리 잊으려 한다”는 그는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드라마를 서둘렀다”고 말한다.
◆1200만 영화의 주연배우 “다음 목표는 300만명”
‘왕의 남자’ 에서 ‘연애시대’까지 감우성이 작품을 선택하는 가장 큰 근거는 “나는 비주류 배우”라는 자기인식이다.
“제가 욕심대로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잖아요. 그러다보니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힘을 합쳐서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 매진할 뿐입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사람과 작업하느냐예요. 그러고보면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엄청난 욕심을 갖고 있네요.”
‘연애시대’도 지난 11월경 연출을 맡은 한지승 감독의 배우 감우성에 대한 깊은 관심에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왕의 남자’도 마찬가지. 대한민국 남자 흥행배우의 손을 모두 거쳤던 ‘왕의 남자’ 시나리오는 감우성과 만나며 주인을 찾았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사극에 대한 거부감, 광대의 사설과 몸짓 연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우성 이전에 숱한 배우들에게 거절당했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시나리오는 두 번 다시 못 받을 것 같다”던 감우성은 “정적인 남자의 전형을 갖고 있는 내게 장생을 맡기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고 늘어졌고 감독은 집요하게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가슴속에 1000도짜리 불덩어리를 갖고 있는 감우성은 장생 그 자체”(이준익 감독)임을 보여줬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작품이 내게 요구하는 정도를 넘어서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했다”고 평가하는 감우성은 ‘왕의 남자’의 성공 이유보다 의미에 집중했다. “그동안 거대 영화사가 스타 배우를 써야만 흥행한다는 공식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잖아요. 그런데 ‘왕의 남자’는 관객과의 직거래를 통해 그게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한, 가장 이상적인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1200만 관객 돌파 신화의 주역인 감우성. 그의 다음 목표는 “300만명”이다. “앞으로도 300만 관객을 위해 영화 작업을 할 생각이에요. 300만이면 제작사가 대략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이고 저도 하고싶은 연기를 할 수 있거든요. 보시는 분들과 만드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만족감은 300만명이면 충분해요.”
◆멜로의 끝, ‘연애시대’
공포물 ‘알 포인트’ ‘거미숲’, 코믹영화 ‘간 큰 가족’, 사극 ‘왕의 남자’ 등에서 영화배우로 입지를 다진 감우성의 안방 복귀는 4년 만이다. 2002년 MBC ‘현정아 사랑해’ 이후 오랜 만이다. 특히 그간 종종 “더 이상 멜로를 하기 싫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던 감우성이 멜로 주인공으로 복귀한 것은 의외다. “전 더 이상 멜로를 잘할 자신이 없어요. 순수한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고 할까. 물론 배우로서 기술적으로 연기할 수는 있겠지요. ‘연애시대’는 멜로물이긴 하지만 결혼 그 이후의 심리적인 인간적 갈등이 재밌게 표현되는 작품이라서 공감대를 느꼈어요.”
그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보고 나서 반드시 남는 게 있어야 된다”는 것. “왕의 남자를 통해 제가 톱스타가 아닌 비주류 배우였음이 알려졌잖아요. 전 언제나 관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비주류 배우인 게 좋습니다. 제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분들에게 만족을 드리는 배우이고 싶거든요.”
영화와 드라마의 흥행 여부를 축구와 비교하길 좋아하는 감우성은 “축구에는 화려한 진용의 승리도 있겠지만 때론 맨손으로 뛰어든 약체 팀의 눈물겨운 승리도 있다”며 “어쨌거나 내겐 다음 시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서 자신의 차기작에 대한 홍보성 멘트나 자기도취적인 열정은 찾아볼 길 없다. “냉정하게 결과를 보고 평가해 달라”는 그는 “어떻게 됐든 작품의 질적 완성도를 높일 자신은 있다”는 말을 조용히 덧붙일 뿐이다.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가슴속 불덩어리를 감추느라 애써 차가운 척하는 배우” 감우성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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