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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감우성 대역 권원태씨 "줄타기는 인생과 똑같아"

입력 : 2006-02-03 08:52:00 수정 : 2006-02-03 0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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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가 말이죠 인생하고 똑같아요.
우리 인생은 탯줄을 끊고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흔들거리는 줄 위에서 아슬아슬 곡예 하듯이 살잖아요.
아스팔트 위가 아니니 여차 잘못하면 줄에서 떨어지고….
죽어서는 삼베 줄로 꽁꽁 묶으면 끝이잖아요.
줄타기나 사람 사는 것이나 다 같은 이치지요.”

안성 바우덕이풍물단의 어름사니(줄타기 고수) 권원태씨가 담배연기 한 모금을 깊게 마신 뒤 내뱉으며 말했다. 그는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 분)이 높은 줄 위에서 하늘로 솟구쳐 펄펄 나는 줄타기 장면을 대역했다. 영화 덕분에 요즘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그는 2004년 세계줄타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날린, 이 세계에선 유명인. 167cm의 키에 몸무게 61kg의 다부진 체격이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붕붕 나는 모습을 보고 인터넷엔 피아노 줄을 달고 했다는 글이 올랐더라고요. 그러단 잘못하면 줄이 목에 걸려 큰 사고 나죠.” 영화 이야기가 나오자 약간 머쓱해한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우리 나이로 불혹이다. 열 살 때 줄타기를 시작했으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떻게 시작했느냐”고 묻자 “그냥 ‘열 살 때부터 시작했다’고만 하자”며 말을 잇지 않는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화석처럼 굳어버린 인생의 회한을 툭툭 털어내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했다.
그의 침묵이 웅변하듯이 줄타기 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다른 길을 찾기 위해 여러 번 노력했다. 1995년 결혼 후엔 사업에 손을 댔다가 1990년대 말 경제위기가 오면서 빚더미에 앉기도 했다. “다른 길로 가기 위해 발버둥도 많아 쳐봤어요. 그럴 때마다 ‘광대의 길’이라고나 할까, 이 세계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하곤 다시 돌아왔습니다.”
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그에게도 처음은 있었다. “첫 공연에선 아무 생각 없었어요. 엄청나게 긴장해서 손에서 땀이 줄줄 나고…. 배운 대로 해서 떨어져 다치지 말자는 생각뿐이었죠.” 줄타기가 2∼5m 높이에서 하는 예술인 만큼 어름사니는 항상 부상의 위험 속에서 연습과 연희를 한다.
“수도 없이 다쳤어요. 떨어지고 까지고 부러지고…. 처음 다쳤을 때는 이것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한번 다치면 1, 2년도 쉴 수 있고 잘못하면 영원히 쉴 수도 있으니…. 지금도 ‘떨어지면 어떡하나?’ 그런 두려움이 있죠.” 그는 2003년에도 추락해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줄타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다고 했다. “10, 20대는 떨어져서 다치지나 말자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30대에 들어서니 내가 줄타기를 즐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젠 나이가 드니 다시 조심하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앞에 둔 장생이 눈물겨운 대사를 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광대지.” 권원태씨는 어떨까? 그는 사뭇 달랐다. “어∼휴. 난 아닙니다. 혹독한 연습을 하면서 말 못할 고통을 경험하고, 아프고, 다치고, 항상 긴장해야 하고…. 지금 생각하면 다 스트레스였죠.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 시작하라면 누가 하겠어요? 모르면 모를까.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정말 힘들죠.”
그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다. 가르치는 제자들이 ‘청어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전국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어름사니는 네댓 명 정도입니다. 한 명이 기껏해야 제자 두세 명 기르는데, 내 대에서 줄타기의 맥이 끊길까 봐 두려워 부지런히 가르칩니다. 앞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제자들이 컸을 때는 빛도 보겠죠. 고놈들이 자라서 대학교수라도 되면 난 대학교수의 선생님이 아닙니까? 어허허”
안성=글 김청중·박진우, 사진 황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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