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개방 파고에 관광농장 탈바꿈 사막에서 농업공동체인 ‘키부츠(국영농장)’와 ‘모샤브(개인농장)’를 건설해 농업생산성 극대화로 부국을 건설한 이스라엘. 그런 이스라엘에도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 따른 농산물 수입개방 여파는 여지없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달 19일 골란 고원이 정면에 바라다보이는 갈릴리 호숫가 동편에 위치한 최초의 유대인 정착지 중의 하나인 ‘엔게브’ 키부츠. 이곳 매니저 격인 요엘(57)씨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세계농업기술상 수상자들의 방문을 맞는다. 요엘씨는 수상자들을 보자 별말없이 입구 쪽 기념품점 앞에 서있던 관광객들을 위한 3칸짜리 코끼리차에 타라는 말부터 했다.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1948년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에 서로 골란 고원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사망한 이곳 키부츠 출신의 전사자 6명을 위해 만든 6일전쟁 기념관. 요엘씨는 먼 이국에서 온 농업인들에게 농가 현황을 설명하기에 앞서 기념관 참배부터 권했다. 어찌보면 손님을 맞는 태도에 불쾌할 수도 있지만 조국을 위해 전사한 이들을 예우하는 그들의 애국심은 본받을 만했다.
모두 500여명이 거주하는 엔게브 키부츠는 이스라엘 전국에 산재해 있는 250여개의 키부츠 중의 하나다. .500명의 거주인 중 230명이 농업에 종사하는 인원으로 잡혀 있는데, 이중에서도 18세 미만의 150명은 어린이여서 키부츠에서 진짜 영농을 하는 농업인은 80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70여명은 군인이거나 임시거주자 또는 이곳에 거주하면서도 정치인이나 회사원 등으로 외지에 직장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엔게브 키부츠는 모두 300ha(90만평)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중 3분의1이 넘는 100ha(30만평)에 바나나를 재배하는 바나나 전문 키부츠다. 연간소득은 22억원 정도니 농업인 1명당 3억원 가까운 소득이 돌아가는 셈이다. 키부츠 내에 유아원과 학교에서부터 병원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 내 대부분의 키부츠가 농업으로 시작돼 발전해 왔지만 두번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농업경쟁력이 치열해지고 재정적으로 어려워져 목축업이나 호텔 식당 등을 함께 운영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등 격동에 휩싸여 있다. 엔게브 키부츠의 경우 그래도 적응을 잘해 농업소득이 우리와 비교할 때 적지 않은 편이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도 수입개방의 파고는 피할 수 없어 대책마련에 골몰하는 것은 우리와 똑같다.
요엘씨는 “지금까지는 생산만 하면 정부에서 모든 것을 팔아주곤 했는데 수입개방이 가속화하면서 농산물 값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곳 농업인들도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켜 달라며 예정에는 생각도 못했던 데모를 벌일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 농업의 국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곳에도 우리의 그린투어리즘 격인 녹색관광 농촌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이곳의 수입비율도 순수농업 수입이 40%에 머물고, 관광관련 수입이 60%로 농산물 수입을 앞지르고 있다.
수상자들은 “우리가 펼치고 있는 녹색농촌 관광사업이 규모가 너무 작고 아직 초보단계여서 그다지 수입창출이 안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의 높은 농업기술력과 결부시킨다면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갈릴리=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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