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오대학에 오면 일본 주류사회의 동향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일본 주류사회가 현재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 지향점은 무엇인지를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게이오대학의 특징은 일본의 여러 대학 중 가장 현실에 근거하고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학풍을 들 수 있다. 기품 있는 일본 주류사회 멤버가 게이오 동문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런 현실주의적 관점은 설립자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의 이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후쿠자와는 일본 근대사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대학자다. 서양 세력을 배척하기보다는 현실적 접근을 통해 그들의 장점과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일본을 근대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1868년 게이오대학를 설립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면서 주류사회를 움직이는 리더십을 연마한다는 건학이념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래서 이론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필자 역시 게이오의 이 같은 장점을 될 수 있으면 많이 파악하고 더욱 많이 흡수하려고 애쓰고 있다.
1960∼70년대 일본을 휩쓸었던 좌파 열풍을 보면 게이오대학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는 도쿄대학 등 유명 대학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즉 좌파 이념을 공부하지 않으면 행세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게이오대학만은 여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꿋꿋이 현실을 직시하는 학풍 때문이다. 당시 게이오대학 교수들은 좌파 이념은 20년이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학생들을 설득했다.
현실 감각과 국제적 안목을 키워온 전통 덕분이었다. 이 때문에 교수들의 교수법도 이론보다는 현실에 깊게 파고드는 경향이 강하다. 논문이나 리포트 역시 이론적 설명보다는 현실을 파악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 까닭에 대학원이나 학부 수업에 현실 정치인들이나 최고경영자(CEO)들이 많이 참여해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게이오대학만의 장점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바라보는 대학에 대한 관점을 얘기하고, 학생들은 그런 사회 인사들을 세속적이라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게이오대학 출신들은 특히 일본 사회의 정치·경제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보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최희식·게이오대학원 박사과정·정치학 |
지난해 도쿄증시에 상장된 회사 가운데 게이오 출신 CEO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될 만큼 재계에서는 게이오대학 출신이 압도하고 있다. 일본에서 동문의 기부금만으로 학교 재정을 충당하는 대학은 게이오뿐이다. 부자 동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게이오대학 축제는 일본 축제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보통 대학생들만의 행사로 인식되는 게 대학 축제이지만 게이오대학은 시민과 함께한다. 지난 21일부터 4일간 이어진 축제에선 예년처럼 시민 100만여명이 대학을 찾았다.
부자들의 잔치라는 질시어린 비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화려함이 여타 대학 축제를 압도한다. 일본에서 기품 있는 멋쟁이 대학생은 바로 게이오대학 학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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