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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기칼럼]삼강오륜(三綱五倫)이 죽은 사회

입력 : 2005-10-10 16:53:00 수정 : 2005-10-10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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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아졌다. 나뭇잎이 매일 조금씩 붉어지고 있다. 가을이다. 가을은 한인사회에 많은 행사를 만든다. 행사장에 나가면 오랫동안 못 보던 얼굴들을 볼 수 있어 좋다. 평소에는 못 봐도, 이런 모임에서 만나 서로 반가워함은 그래도 이민살이 하면서 생긴 정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한 행사엘 참석했다. 날씨도 청명한 날, 하루를 그 행사 속에서 뒹굴리라 마음먹고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달라졌다. 보지 않아도 될 사람, 외로운 이민사회에서 서로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스치기만 해도 마음에 먼지를 끼게 하는 사람, 그런 부부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참으로 쉽지 않은 나의 나들이였건만 처음부터 깨져버렸다.

나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부부는 하나돼야 한다, 부부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훌륭한 부모가 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사회, 평화로운 세계가 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때로는 부부사이나 아이들, 양가 부모님 등 가정이 화합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 간혹 있어도 부부가 가정의 기본이라는 배움이 터가 되어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기도 했다.

서로 모르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살면서 아이 낳고 기르고, 또 남의 부모를 시부모님, 장인장모로 모시게 된다는 건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서 살다 보니 부부관계나 가정생활이 한국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너무 개방된 나라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너무 돈버는 일에만 앞서 생각을 해서 그럴까. 부부간의 신뢰가 깨진 경우가 많았고, 아이들조차 잘못되어 가정파탄 된 집이 많았다. 이혼한 자들, 헤어져 사는 부부, 또 다른 배우자를 만나 사는 사람들, 그리고 부모의 생이별로 인해 가슴에 상처를 안고 방황하는 아이들...

부모가 깨지지 않더라도 바깥으로 돌면서 잘못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부모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죄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이중의 상처로 멍울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 나라를 버리고 미국이란 나라에까지 온 것은 아닐텐데, 잘살아보겠다고 왔을 텐데...

이날, 그 부부는 하루종일 나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이민사회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바람피울 일도 쉽지 않을텐데, 남자가 바람이 났다. 아들인지 딸인지 대학을 졸업했다고 들었다. 그런 큰자식을 둔, 젊지도 않은 나이에 어떤 여자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다. 돈이 좀 있는 여자라는 말도 들렸다. 남자가 망할 귀신이 들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더욱 웃기는 게 홧김에 서방질한다던가, 여자가 남편의 친구와 바람이 나버렸다. 여자도 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단다. 그때 한인사회에서는 그들을 미친놈, 미친년이라 했다. 수 십 년간 함께 살아온 부인을 버리고 딴 여자와 붙어서 사는 남자나, 부인 있는 남자를, 더구나 남편 친구를 꼬셔서 사는 여자나, 다 미친 사람들이 틀림없다. 그렇게 남의 여자, 나의 남자와 살던 부부가 다시 합쳤다던가, 그날 그들이 함께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그날 행사까지 주도했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중 앞에 나설 수 있을까,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공인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행사는 기분 좋게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그들을 바라봤다. 조용히 살아야 할 사람들이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설쳐대는 게 보기 싫었다. 이 사회에는 이들 말고도 이런 사람들이 또 있다. 여럿 있다.

이민사회란 참으로 특별한 세계다. 가정 깨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이행하는 사회. 어디 가정 뿐인가. 옛부터 내려오던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다 죽어버렸다. 삼강오륜이란 무엇인가. 삼강(三綱)은 父爲子綱(부위자강-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 君爲臣綱(군위신강-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 夫爲婦綱(부위부강-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다)이고, 오륜(五倫)은 君臣有義(군신유의-임금과 신하는 의리가 있어야 하고), 父子有親(부자유친-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이 있어야 하며), 夫婦有別(부부유별-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하며), 長幼有序(장유유서-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어야 하고), 朋友有信(붕우유신-벗과 벗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이다. 이는 유교의 근본윤리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서 우리가 옛부터 기본으로 행해왔던 윤리도덕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국서나 여기서나 삼강오륜을 지키는 이 얼마나 있을까. 아래 위가 없는 세상, 부모자식간, 부부간의 윤리조차 없어지고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다. 아무리 어려운 이민생활이라 하더라도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예전처럼 이를 지키면서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이민사회가 되겠는가.

더욱이 가정과 사회의 기본인 부부가 생활함에 있어 -물론 사회적인 양상이 달라진 지금 이 시대에 남녀를 차별할 수는 없지만- 부위부강(夫爲婦綱)을 이 시대에 맞게 잘 해석하여 남편과 아내가 유별(有別)한 부부의 도를 잘 지키면서 산다면 더욱 행복한 가정과 사회가 될 것을 믿어마지 않는다. 가정을 지키는 일은 부부가 함께 할 일이다.


김옥기·미주세계일보 편집인

<전교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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