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벽''엔 2만여명의 소망의 글 눈길
내부수리중 상가·헌책방거리 특수 기대감 21세기 서울의 변화상을 상징할 청계천이 10월 1일 새 물길을 연다. 2003년 7월 서울시가 600년 도읍지의 역사와 문화·환경 복원을 명목으로 착공한 지 2년3개월 만의 개가다. 이에 따라 1937년 이후 회색 시멘트 구조물 아래서 썩어만 가던 청계천은 다시 푸른 물길로 되살아나 시민의 품에 안기게 됐다. 무려 68년 만에 이뤄진 생명의 부활이다. 세계일보는 26일부터 여섯차례에 걸쳐 청계천 복원 과정과 앞으로 달라질 모습을 집중 조명한다.
청계천 공식 개통을 엿새 앞둔 25일 오후 2시. 청계천 시점부인 종로구 세종로 청계광장은 청명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휴일을 즐기려는 가족과 연인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광장 곳곳에선 마무리 공사의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와 8석담에서 청계천으로 떨어지는 초당 0.85t의 물을 보고 있노라니 청계천이 이미 도심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새삼 실감케 됐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이상진(32·송파구)씨는 “지금까지 도심에서 건물만 쳐다보던 직장인에게 청계천 복원은 새로운 활력소”라며 “청계천에 물이 흐른 뒤부터는 가족을 데리고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이 광통교 옆에 있다는 최혜리(25·여)씨도 “각박한 도심 속에 시원한 하천이 생겨 너무 반갑다”며 “평일뿐 아니라 휴일에도 만남의 장소로 청계천을 애용한다”고 청계천 예찬론을 폈다.
청계천 복원으로 그동안 메마른 ‘일터’로만 인식되던 강북 도심이 푸른 ‘휴식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청계천을 보기 위해 경기 분당에서 찾아왔다는 이종만(74)씨는 “서울 한복판에 깨끗한 하천이 흐른다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자랑거리”라며 “옛 청계천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청계천 복원과 함께 주변 조성물이나 인근 거리도 시민들을 위한 특색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광교를 지나쳐 걷다 보면 하얀 도자 위에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길이 192m의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시선을 붙잡는다. 조선시대 정조가 수원화성을 행차하는 모습을 5120장 타일에 재현한 반차도는 이미 새 청계천 명물로 자리잡았다.
장통교 옆 종로구 관철동 ‘피아노 거리’도 건반 모양의 대형 조형물을 보러온 젊은이들로 붐볐고, 근처에선 청계천 개통을 기념해 다음달 1일부터 펼쳐지는 ‘청계천 아티스트’ 행사 준비로 기획이벤트사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청계천 특수를 기대하며 내부 수리 중인 식당과 가게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한 패밀리 레스토랑 주인은 “청계천 개통으로 전년에 비해 매출이 벌써 10% 이상 늘어났다”며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시민들이 찾기 시작하면 매출이 크게 늘 것”이라고 즐거워했다.
청계 5∼6가에 걸쳐 있는 평화시장 헌책방 거리도 청계천과 함께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4평 남짓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해각(64)씨는 “한때 150여곳에 이르던 헌책방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더니 지금은 50여곳에도 못 미친다”면서 “그러나 청계천 개통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특수 기대감을 나타냈다.
청계 8가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서는 좌우 옹벽에 설치된 ‘소망의 벽’이 눈길을 끌었다. 이 벽에는 2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각자의 소망을 적은 글들이 적혀 있다.
그러나 개선해야 할 문제점도 많다. 실제로 이날 5.8㎞에 이르는 청계천 복원구간을 걷는 동안 불평을 늘어놓는 시민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광통교 부근에서 살았다는 이의열(86·인천연수구)씨는 “보도가 너무 좁아 반대편에서 두 사람만 와도 차도로 내려가야 하는 등 산책하기가 쉽지 않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직장인 박찬희(36)씨도 “주변에 휴지통이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곤욕을 치르게 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청계3가에서 공구점을 운영하는 이관국(58)씨는 “인근에 주차장이 부족해 상가 앞에 무단주차하는 차량들로 주변 정체가 심각하다”며 단속을 요구했다.
장석효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은 이에 “관리 문제 등으로 인해 청계천변에 화장실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인근 80여곳의 건물에 개방형 화장실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좁은 보도나 주차문제 등 청계천 개통을 앞두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2년 3개월에 걸친 대역사를 마치고 국내외 관심속에 부활을 기다리는 청계천은 이미 서울 시민의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신정훈 기자 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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