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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배낭여행]영국 중부지방 유서깊은 워릭성

입력 : 2005-06-10 14:53:00 수정 : 2005-06-10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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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옷 입고 당시 생활 재연
천년을 뛰어넘는 ''시간여행''
여행은 우연과 새로운 발견이 가득한 즐거움이다. 그날 아침은 특히 더 그랬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햄릿’ 일정 때문에 발이 묶여 버린 것이다. 영국 민박인 ‘B&B(Bed and Breakfast)’에서 주는 푸짐한 영국식 아침식사를 들며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 귀에 들린 것은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다른 여행객과 민박집 아주머니의 대화였다. “오늘은 어디 가실 거예요”라며 주인 아주머니는 예의 높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 여행객은 아주머니에게 답했다. “워릭 성에 가려고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래, 바로 저거야!’
워릭 성(Warrick Castle)은 11세기 정복자 윌리엄의 명령으로 지어졌다. 그 후 워릭의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여러 왕을 권좌에 올렸던 리처드 네빌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살았던 아름다운 중세 성이다.
식사를 마친 후 서둘러 버스를 타고 간 워릭 성은 역시 입구부터 달랐다. 규모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매우 훌륭했다. 게다가 입장료마저도 매우 달랐다. 학생요금은 9.95파운드로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였다.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입장료를 사는 곳에 빨갛고 노란 중세 복장을 한 세 명이 나란히 서서 엘리자베스 시대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근처 벤치에 앉아 신기하게 구경하면서 음악을 즐겼다. 흥겨운 노래에 나도 모르게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내 지갑을 탈출한 돈은 여지없이 판매원의 손으로 재빠르게 넘어갔고, 나는 입장권을 받아들고 무거운 회색빛 벽돌로 지어진 아치형 문을 통과해 성벽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소 어두운 색의 성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초록빛 잔디가 펼쳐졌다. 잔디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저 멀리 거대한 성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었다. 성 근처에서는 다양한 색의 중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서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검을 들고 수련하는 사람, 활을 쏘는 남자,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여자, 공으로 묘기를 부리는 광대. 그러나 그 중 가장 이목을 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말을 탄 중세의 기사였다.

◇워릭 성 입구에서 중세 복장을 하고 엘리자베스 시대의 노래를 부르는 악단.
흰 머리카락이 섞여 회색으로 보이는 곱슬머리에 빛나는 갑옷을 차려 입고 빨간 천으로 치장한 커다란 말 위에 당당히 앉아 있는 기사.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신기한 구경거리를 발견한 관광객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금 목청을 가다듬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제프리 게이트 경이라 하오! 원래 15세기에 살았으나 이렇게 현대로 다시 오게 되었소. 여기는 워릭의 영주인 리처드 네빌의 성이오. 돌아보셨으면 알겠지만 워릭 영주는 한때 왕을 투옥하기도 하는 등 그 세력이 대단…”
그때였다. “실례합니다”라며 연설을 듣고 있던 여자 관광객이 손을 들어 경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게이트 경은 고개를 홱 돌려 말을 끊은 사람을 내려다보더니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야단을 쳤다.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이 마녀 같은 여자야! 내 어련히 이야기하지 않을까!”
생각지도 못한 호통에 모여든 사람들 모두 큰소리로 웃음보를 터뜨렸다. 관광객을 마녀라고 부르다니. 그러나 그 ‘마녀’도 웃고 있었다. 기사는 만족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펴보더니 또 다른 여자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온 게요?” 게이트 경의 느닷없는 지목에 여자는 약간 불안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 남자를 보는 게이트 경의 얼굴에 악의에 찬 미소가 가득 퍼졌다.
“그렇다면 나의 연설이 끝나거든 성문 밖에서 만나 이 여인을 두고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하겠소! 이 보오, 당신 검은 있소?” 목숨을 건 결투신청을 받은 남자 관광객은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게이트 경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흠, 그렇다면 도끼는?”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다시 젓는 모습에 기사는 과장된 목소리로 절규하듯 묻는다. “아니면 활이라도?”

남자가 계속 없다며 고개를 내젓자 게이트 경은 안됐다는 듯이 악랄하게 웃으면서 다른 관광객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안됐소만 이 결투는 매우 쉽게 승부가 날 것 같군.” 게이트 경은 또다시 이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묻는다. “하다못해 뾰족하게 깎은 막대기라도 없단 말이오?”

끈질긴 게이트 경의 농담과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 웃음보를 터뜨렸다. 덩치가 큰 자신의 애마를 팅커벨이라고 소개하던 게이트 경을 뒤로하고 나는 워릭성의 사냥터로 향했다. 작은 강을 건너간 곳은 넓은 초록빛 땅이었다.

그 옛날 귀족들이 모여 짐승을 사냥하거나 강에 작은 배를 띄우던 곳이었다. 북적거리는 성과는 달리 이곳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조용한 잔디밭 옆에는 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옆으로 오리 한 마리가 부리로 깃털을 고르고 있었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행의 피곤함을 달랬다.
당시 복장을 하고 그때의 생활상을 재연하던 그들 덕에 나는 이곳 워릭 성에서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시간여행을 경험했다.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성을 바라보며 초록빛 잔디 위 벤치에 앉아서 영국 중세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우연으로 인한 발견.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박소진 배낭여행 커뮤니티 ‘떠나볼까’(www.prettynim.com) 회원.

■여행정보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서 연극 감상


워릭 성에 가려면 일단 워릭으로 가야 한다. 런던이나 버밍엄에서 바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가서 숙소를 잡고 워릭에는 당일로 버스를 타고 다녀오는 방법도 있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가려면 런던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타면 된다. 스트랫퍼드에서 워릭으로 가려면 인포메이션센터 오른쪽에 있는 버스정류장(맥도널드 건너편)에서 X16번을 타면 된다.

유스호스텔에서 머무는 사람들은 호스텔 바로 앞에서 워릭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프런트에 시간표가 있다. 약 20분 걸리고, 매시 5분에 출발한다. 버스 왕복표는 3.70파운드(약 7500원). 워릭성 입장료는 학생은 9.90파운드, 성인은 13.50파운드이다. 여름철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겨울철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스트랫퍼드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이니 꼭 들러 연극 한 편을 보는 것이 좋다. 시즌에 따라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물론 다른 극작가의 연극도 상영하니 마을에 위치한 두 개의 극장에서 잘 선택해서 보면 좋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이 있으나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다. 시내와 가까운 B&B에서 묵는 것도 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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