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사람들이 한 50여명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들은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하얀 쪽지를 들고 나오는 사람은 웃음이 만연 한 것을 보면 합격인 것 같고 하얀 쪽지가 없고 그냥 나오는 표정이 없는 사람은 불합격인 것 같고….
비교적 일찍 내 이름을 불렀다. 인터뷰는 간단했다. 아이가 몇이냐 주소가 안 바뀌었느냐. 체포당한 적 있느냐 미국정부를 긍정하느냐? 직업은 무엇이냐? 아주 일상적인 너무도 간단한 것들을 물어 본다.
그리고는 하얀 시험지 한 장을 내밀더니 읽고 답을 쓰라고 한다.
초대 대통령은 누구이냐. 두 정당은 무엇 무엇이냐.
너무도 쉽고 간단해서 웃음이 나왔다. 하긴 일년 이상을 귀에 이어폰 꽂고 한 공부다.
만일에 공부를 안 했으면 대법원 대법관을 누가 임명하는 지 알 수는 없다.
시험지를 일사천리로 써서 후다닥 냈다. 그랬더니 인터뷰는 맘에 드는지 엄지손가락을 들고 “Pass!(합격)” 라고 한다.
그리고 같은 날 12시 반에 선서를 하고 시민증을 준다고 시간 맞추어서 오라고 했다. 나가서 점심을 먹고 선서 시간에 들어오니 모두 32명이 있었다. 영주권을 반납했다. 선서식을 아주 근사하게 한다. 대통령의 비디오 메시지도 있었고 애국가도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했다.
맹세야 직장이 고등학교이니 매일 학교에서 아침마다 하니까 진작 달달 외우지만 애국가는 할 줄을 모른다. 남이 하는 대로 입을 우물거렸다.
곧 바로 미국여권 신청하라는 안내서도 받았다. 이제 한국에 가려면 영주권이 없으니 한국여권은 기한이 있다 하더라도 쓸 수가 없다.
◇ 북부 버지니아 이민국 정문
인터뷰 날짜 기다리며 역사공부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다 없어지며 기뻤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왠지 법적으론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것이 좀 서운했다. 내가 미국 시민권을 얻은 것은 순전히 그 거소증 때문이었다.
내 아들에게 어머니가 영주권자라 하더라도 거소증을 좀 주었으면 나는 지금도 그냥 대한민국 국적을 소유하고 영주권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신청하는 사람들 중엔 참으로 부끄러운 사람들이 있으니 한국에 가서 군대 가기 싫다거나 군대에 안 가려고 국적을 버리는 교포들이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국방의 의무가 하기 싫어서 미국에 와서 눌러 앉는 그런 청년들을 보면 참으로 얄미운 생각이 든다.
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 변호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지만 사람이 사는 것에 마음 한구석에 떳떳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은 그런 것을 기피하는 데 이용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배우 차인표씨를 좋아하는 건 당당히 국방의 의무를 다 했다는 것이다.
배우나 탤런트들 중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군대를 기피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데도 당당히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군대를 다녀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나 실컷 벌어먹고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이용하여 군대 안가는 사람도 보았다.
나는 아들로 하여금 거소증을 받게 하려고 시민권자가 되었다.
자식을 위해서는 조국도 버리는 어머니는 아니지만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해서 내 속까지 미국시민이 되지는 않는다.
자식이 한국에서 좀더 살기 편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한국국적을 포기 할 수 있다.
나는 법적으로 시민권 자이지만 당연히 대한민국 충청도 사람이다.
언제 다시 국적을 회복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이년 새에 미국 역사 공부는 많이 했다.
성조기 앞에서 한사람씩 시민권 증서를 전달하는데 내 이름이 맨 먼저 불리워졌다. 나는 시민권 증서를 받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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