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책 한권 때문에 아침부터 전화를 해대는 거야? 1만원도 안 되는 책, 돈으로 대신 내면 될 거 아냐.”
서울 양천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김광순(48·여)씨는 요즘 도서 연체자에게 독촉전화를 하느라 온종일 전화통과 씨름하고 있다. 1분여의 통화 뒤 전화를 끊은 김씨는 곧바로 다른 전화번호를 누른다. 김씨는 오전 내내 독촉전화만 40∼50통을 할 뿐 도서대출과 반납, 서가 정리, 책 안내, 예약확인·취소 등 다른 업무는 엄두조차 못 낸다. 지난 16일 현재 이 도서관에 연체된 책은 2503권으로 김씨가 이렇게 부지런히 해도 전체 연체자에게 전화를 거는데 4일 정도 걸린다.
김씨는 연체자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미안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짜증내는 사람들이 많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는 “책을 빌려간 사람들이 제때 반납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다”고 말한다.
이처럼 책을 빌려간 뒤 제때 되돌려 주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공공도서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체된 책을 회수하기 위해 독촉전화를 하느라 평균 하루 2시간 이상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다른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다. 대출예약을 하고 그 책의 반납일에 맞춰 도서관을 찾았다가 책이 연체돼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는 이용자들도 적지않다.
16일 현재 대출회원이 11만2000여명인 양천도서관은 대출된 12만4150권 중 2503권이 연체돼 있다. 특히 그 중 절반 정도는 15일 이상 장기연체된 것들이다.
무작정 반납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은 책을 또 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연체자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도서관은 처음에는 문자나 음성 메시지로 연체 사실을 알린다. 그래도 반납이 안될 경우 독촉전화를 한다.
하지만 연체에 대해 벌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라고는 연체기간 만큼의 대출자격을 정지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 때문에 연체 대출자들이 줄지 않고 늘고 있다. 다른 도서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출 회원수가 7만3000여명인 서울 정독도서관은 현재 1205권의 책이 연체돼 있다. 대출 이용자가 5만9000여명인 남산도서관도 1317권이며, 용산도서관(대출회원 1만9000여명)도 766권의 책이 반납일을 이미 넘겼다.
서울의 17개 공공도서관을 총괄하는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진흥과 김동일 사무관은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독서율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연체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면 독서인구가 더 줄어들 것 같아 따로 제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은 아직 없다”며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하루 빨리 자리잡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우상규·심재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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