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없는 남편 모습과 닮아 보여… 내가 사는 작은 마을, 꽃도 없고 샘도 없는 작은 집. 여자들은 돌투성이 밭과 바위만큼 억센 아이들과 무심한 남편들을 일구는 데 지쳤습니다. 잔소리꾼 아내에게서 도망치듯 바다로 나가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러댑니다. 차라리 바닷속을 일구는 게 낫겠어.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수요일, 당신이 우리 마을에 떠내려 왔지요. 해초 뭉치들과 해파리의 촉수들, 물고기와 표류물의 잔해를 걸치고, 마치 군함처럼.
작은 집에 당신을 눕혔을 때 집이 꽉 차는 걸 보며 남자들은 투덜댔지요. 이 사람은 어찌나 큰지 어쩌면 익사하고 나서도 계속 자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인지도 몰라. 당신이 말처럼 커서인지 고기를 잡으러 나갈 수 없어서인지, 실종자를 찾으러 이웃마을로 떠나는 순간까지 떨떠름한 표정들이었어요.
여자들은 먼발치에서 당신을 보는 순간,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불현듯 깨달았지요. 이웃집 젊은 여자는 걸레를 들고 가장 빨리 달려왔습니다. 그녀는 익사체의 얼굴 가까이에 앉아 머리카락에 엉겨붙은 바다 밑 돌들을 떼어내고, 한발 늦게 와서 좋은 자리를 놓친 중년의 여자는 물고기의 비늘을 벗길 때 쓰는 도구를 들고 대문짝만한 가슴팍을 어루만졌지요. 그리고 깨끗해진 당신을 발견한 순간 당신이 어떤 사내인지 깨닫고 화들짝 숨을 멈추었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거쳐 온 먼 대양과 깊은 바닷속, 화려한 삶에 비해 절벽 위의 손바닥 만한 곳에 사는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던지요. 바다로 나가면 하늘을 찌를 듯한 당신의 권위에 물고기들이 알아서 튀어오르고, 당신이 밟고 지나가면 돌밭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절벽 위에서 꽃이 자랄 것이라고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룻밤이면 할 일을 남편은 평생이 걸려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은밀히 비교했지요. 여인네들은 멋진 남자와 살지 못하는 현실을 몰래 비관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커도 너무 컸습니다. 당신을 옮길 때는 죽은 말처럼 질질 끌어야 했고, 당신을 올려놓을 침대는 구할 수조차 없었어요. 여자들은 은근히 당신을 경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몸을 가진 사내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지나치게 큰 쓸모없는 덩치 때문에 어디서나 놀림감이 되었을 테지. 느려터진 몸짓 때문에 아내는 잔소리를 해댔을 테지. 나는 당신을 보며 혀를 츳츳 찼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당신 얼굴에 손수건 한 장을 덮자 그 모습이 어찌나 자신의 남편들과 닮아 보이던지 여인네들의 가슴이 처음으로 젖어들기 시작했지요. 한 여자가 울기 시작하자 다른 여인들도 마치 자기 남편이 죽은 것처럼 서럽게 울어댔습니다. 이렇게 크고 이렇게 아름다운 낯선 남자가 손수건 한 장 덮으니 이렇게도 쉽사리 친근한, 수십 년 함께 살아온 남편처럼 허물없어질 수가 있다니. 나는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마지막 장식을 했습니다. 멋진 남자와 허물없는 남편, 그 사이에서 정성을 다해 꽃으로, 당신을 장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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