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곁에서 더부살이
폴랑거리는 날갯짓 돌림노래 소리 그립다… ‘참’이란 말이 있다. ‘거짓이 아님, 올바름, 진실’이란 뜻의 ‘참’은 물건이나 동식물 앞에 붙어 질이 좋음을 드러낸다. 상대어로는 ‘개’와 ‘돌’을 들 수 있겠다. 우리 숲에서 가장 질이 좋은 나무는 ‘참나무’라 불렸고 양질의 고소한 깨는 ‘참깨’, 맛이 가장 좋은 게는 ‘참게’로 우대됐다.
그렇다면 새 중의 새는 무엇일까. 이름 그대로 ‘참새’다. 선비의 기개를 닮았다는 두루미도,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은 자태가 선연한 민족의 상징 황새도 모두 이 볼품없는 작은 새 앞에선 날개를 접을 일이다. 이름을 지어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던 우리네 조상들이 어떤 연유로 이 새를 참새라 했는지 그 곡절은 알 수 없지만, 이름 만으론 새 중의 새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계절 내내 인가 주변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참새. 옛사람들은 기와지붕 처마 밑에서 사는 새라 하여 와작(瓦雀), 집을 찾는 손님새라 하여 빈작(賓雀)이라 불렀고, 늙어 무늬가 있는 것을 마작(麻雀), 어려서 입이 노란 것을 황작(黃雀)이라 달리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이놈들은 살림집이 초가와 기와집에서 슬래브집과 양옥을 거쳐 아파트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결같이 더부살이를 해온 새다. 한때 업신(業神)으로 살아오던 집구렁이도, 장독대 파리를 먹이 삼던 두꺼비도, 처마 밑에 둥지를 틀던 제비도 다 떠나간 지금 여전히 건물의 비좁은 틈이나 지붕의 빈곳을 어렵사리 찾아내 둥지를 틀고 힘겹게 새끼를 치는 참새. 그들은 황금들녘을 유유히 날며 허수아비를 조롱하고, 해가 지면 초가집 처마 기슭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던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륙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꼬까참새. 이동 시기에 섬 지역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마당에 쌀을 뿌려 놓고 작대기로 대소쿠리를 세워 참새가 날아들기를 기다렸지만 번번이 허탕을 쳤다. 이놈들이 워낙 영리하고 약삭빨라 여간해선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철이 들고 난 다음이다.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맨 새총으로, 또 손전등으로 참새를 잡으려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지금도 때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동지가 지나 찾아오는 납일은 참새떼에게는 수난의 날이었다. 이날 아이에게 참새를 구워 먹이면 침을 흘리지 않고, 마마를 앓고 나서도 흉터가 생기지 않는다는 속설이 시골 부모들의 마음을 바쁘게 했기 때문이다.
‘납일에 먹는 참새 한 마리가 황소 한 마리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으니 참새들이 얼마나 떨었겠는가.
이와 같은 시절을 거쳐 참새는 한동안 겨울철 별미로, 포장마차의 술안주로 인기가 높았다. 그런 참새가 귀해지면서 요즘에는 알을 깨고 나온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은 병아리나 메추라기가 애꿎게 화덕에 오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환경오염 탓에 온몸이 중금속으로 찌든 꼬질꼬질한 참새를 구워 먹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풀에 앉아 먹이를 찾는 참새. 깃의 얼룩무늬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색이다.
참새 개체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이들이 먹이로 삼던 벌레가 채마밭과 함께 사라지고 농민들이 조나 수수 같은 곡식을 심지 않는 탓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새끼를 치고 깃들여 살 번식 장소가 급격히 주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다. 참새는 태어난 보금자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는 텃새인 만큼 환경 변화는 이들의 생존에 한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을 맞아 들녘을 날아다니는 참새 사진을 신문에 게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 근교인 김포나 파주 들녘만 나가도 황금벌판을 날아다니는 참새를 쉽게 담아낼 수 있었지만, 이젠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봄 물범을 카메라에 담을 요량으로 백령도에 갔다가 나뭇가지 위에서 폴랑거리는 참새를 만났다.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르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꼬까참새’. 텃새인 참새와 달리 봄 가을에 우리나라를 경유하는 멧새과의 철새다. 예전에는 우리 들녘을 종횡무진 누비던 참새의 사촌뻘이었으나 이 또한 오늘날에는 보기 힘든 ‘희귀조’로 변하고 있다.
인간 손길로 급속하게 변해가는 한반도의 자연 환경. 흔하디 흔했던 참새도, 꼬까참새도 그 손길에 멍들고 다치면서 우리 곁에서, 한반도의 자연 풍경에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동거의 인연을 맺어온 참새들까지 언젠가 우리 기억 속에서마저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진부 기자 leej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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