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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관찰의 허실](③-1) ''사회봉사명령'' 현장에서는

입력 : 2005-01-26 14:52:00 수정 : 2005-01-26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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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 돕다보면 새삶 의욕 생기죠” ‘할아버지 화장실 가는 거 도와드리고, 밥과 반찬도 나눠드렸다. 눈이 안 좋은 할아버지는 소변을 자주 보시는데 도움 없이는 못 가서 안타까웠다. 이번 사회봉사 활동은 참 잘한 거 같다’(2005년 1월12일) ‘할머니들 뜨거운 수건 덮어드리고 찜질하시는 거 도와드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봉사하니 오늘도 뿌듯했다.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사회봉사를 하지만 참 많은 걸 깨달았다.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다’(1월14일) 이 글은 서울시 관악구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봉사명령을 따르고 있는 소년범 이모(18)군이 작성한 활동일지의 일부다. 절도 전과 3범으로 보호관찰 2년에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을 선고 받은 이군은 12일부터 이곳 복지관에 배치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일 오후 복지관에서 만난 이군의 표정은 밝았다. 이군은 “여기 와서 일하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봉사활동을 마치면 중퇴했던 고등학교에도 복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복지관에 배치된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들은 모두 7명. 이군을 포함해 4명이 치매노인 17명의 목욕과 청소, 식사 및 간식보조 업무 등을 맡고, 나머지 2명은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점심도시락 배달, 다른 1명은 관리실 업무를 돕는다. 폭행죄로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을 선고받은 자영업자 조모(34)씨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도와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그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앞으로 음성 꽃동네처럼 어려운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양센터 한켠에서는 봉사명령 대상자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콩 고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치매 노인들의 인지기능 회복 훈련용으로 선반에 섞어놓은 검은 콩과 누런 콩을 골라내는 일이다.
이들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봉사활동을 한다. 꼬박 하루를 일하다보니 불만도 나온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공문서 위조죄로 징역 8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은 이모(31)씨는 “먹고 살려면 공사대금을 받아야 하는데 주간에만 강제로 봉사활동을 시키니 짬을 낼 수가 없다”며 “이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들의 경우 야간에도 봉사명령을 이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프로그램 전문화·다양화 필요=사회봉사명령과 수강명령은 보호관찰제도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회복귀 프로그램이다. 범죄자에 대해 교도소 등에 구금하는 대신 사회활동을 하면서 일정시간 무보수로 봉사를 하거나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받도록 해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사회에 배상하는 제도다. 1999년 4만1640건이었던 사회봉사명령 실시사건은 2003년 4만6074건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같은 기간 수강명령도 5348건에서 배가 넘는 1만2232건으로 늘었다. 사회봉사·수강명령 제도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사정책 수단으로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교육프로그램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사회봉사명령의 경우 대상자의 직업적 소질과 집행 가능성을 고려한 프로그램과 함께 범죄 죄질과 유사한 봉사기법의 개발 등이 선행돼야 하지만 대부분을 협력기관에 위임해 집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사회봉사명령 집행현황을 보면 보호관찰소 자체 집행은 12.2%에 불과하고, 87.8%는 사회복지관이나 장애인시설 등과 같은 협력기관에 맡겼다. 집행분야도 ▲복지(57.3%) ▲공공시설(25.1%) ▲자연보호(2.7%) ▲대민지원(1.5%) 등 단순 봉사활동에 치중돼 대상자의 소질과 특성, 범죄유형 등에 따른 다양성·전문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협력기관에만 의존해서는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집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관찰소별로 봉사명령 담당직원이 1∼2명에 불과한 실정에서는 프로그램 개발은커녕 협력기관 관리도 벅찬 실정”이라고 말했다.
집행시간이 평일 주간시간으로 한정돼 너무 경직됐다는 비판도 있다. 대상자들이 “봉사기간 동안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다”며 불만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관찰소측은 “협력기관들이 공휴일에 문을 닫고 야간에는 대상자 파견을 꺼려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하지만 오전이나 오후 중 택일, 격일제 등을 통해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강명령도 사정은 비슷하다. 특성별, 유형별로 세분화된 교육프로그램이나 전문가가 부족해 범죄유형에 관계없이 집단적인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룬다. 특히 약물사범의 경우 효과적 치유를 위해 약물검사나 개별적인 면담이 필요하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엄두를 못 낸다는 하소연이다.
서울보호관찰소 직원은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 2∼3년 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수강명령을 실시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서울의 경우 다른 정부부처와 전문기관들과 연계할 수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소년범죄나 성폭력 관련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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