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에 기록 태백산 천제단(天祭壇)은 신라 때부터 임금이 직접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즉위 원년에 사자를 보내어 이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삼국사기’는 “일성왕 5년 10월에 왕이 친히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올렸다”고 기록했으며, ‘동국여지승람’은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으로, 중사(中祀)의 제를 올리던 곳”이라고 전한다.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성현의 ‘허백당집’에 는 “삼도(三道:강원, 경상, 충청도)의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천왕당을 지어 단군의 상을 모셔놓고 제사하는데, 철 따라 천제를 모시고자 오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깨가 서로 부딪치고 앞서 가는 사람의 발 뒤꿈치를 밟을 정도”라고 당시 천제단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천제단은 이렇듯 기도 터로서 유서가 깊으며, 겨울철에도 늘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태백산은 무속의 성지로도 불린다.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일 수십명의 기도자들이 찾아들고 있다. 등산객의 수보다도 이들 기도자의 숫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현지 주민들은 말한다. 태백산 정상 동쪽 아래의 사찰 망경사(望景寺) 요사채는 늘 이들 기도객들로 북적거린다.
태백산 천제는 신라의 통일 이후 맥이 끊어졌다. 중국 천자만이 천제를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연호를 광무로 하고 원구단을 쌓은 뒤 천제를 지냈으나 일제 때 다시 폐지됐다. 그렇지만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사람들은 태백산에 올라 제를 드렸다. 구한말에는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백마를 잡아 기도하니 하늘에서 뇌성이 울렸다고 전한다. 일제 때는 천평땅에 살던 윤상명, 유형호, 이낙림이 주동이 돼 이곳에서 독립만세 기원제를 지냈다.
을유년 첫날 천제단에 올라온 김규봉(57·서울 도봉구 수유동)씨는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에서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는 희열 때문에 매년 이곳에 오른다”며 “새해에는 한민족이 2000년 전의 모습처럼 통합된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빌었다”고 밝혔다. 커버의 일출사진은 그가 제공한 것이다.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에 위치한 천제단은 높이 2.5m 정도의 사각형 제단이다. 태백산에는 장군단과 천왕단, 하단 세 개의 제단이 있는데 이를 통틀어 천제단이라 부른다. 천왕단은 하늘에, 장군단은 사람(장군)에, 하단은 땅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규모가 가장 큰 원형의 천왕단(해발 1561m)은 장군봉에서 300m쯤 더 가야 나온다. 이곳에서 300m 더 가면 작은 사각형의 하단이 있다. 해마다 10월 상순 살아 있는 소를 몰고 올라가 천제단에서 제사를 올렸고, 이를 ‘태우’라고 했다. 지금은 10월 3일 개천절, 소머리만 놓고 제를 올린다.
조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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