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시민혁명 이전 미술품은 왕·귀족 전유물
최초 근대 미술관은 ‘우피치’…‘성 가족’등 소장 미술관의 가장 큰 미덕은 몇푼의 입장료만 내면 신분이 높건 낮건,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위대한 걸작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미술관 관람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됐지만, 왕이나 귀족의 대저택을 장식하던 미술품들이 보통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세기 시민혁명을 치르고 나서부터다.
일반인에게 미술품을 공개하기 시작한 최초의 근대 미술관은 173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이어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이 1750년, 영국 대영박물관이 1753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1793년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시민사회로 접어들면서 봉건 왕·귀족의 ‘감상권’도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대된 것이다.
미술관은 회화·조각·공예 작품과 고고학적 유물을 모두 수집·전시하는 미술(박물)관과 회화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보다 작은 규모의 화랑(갤러리)으로 대별된다.
전자의 경우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을 관장하는 9명의 여신 무사이(Mousai:학예의 신 뮤즈·Muse의 영어이름)에게 바쳐진 성역 ‘무세이온(mouseion)’에서 이름을 따 구미에선 통상 박물관(뮤지엄·museum)으로 불린다. 최초의 무세이온은 기원전 280년쯤 고대 이집트 왕국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세웠지만, 미술품 수집·전시보다는 학예 기능이 강한 일종의 종합연구소였다.
주로 회화를 수집·전시하는 화랑은 이탈리아어와 그리스어로 각각 피나코테카(pinacoteca), 피나코테크(pinakothek)라고 불리는데, 바티칸 미술관의 피나코테카와 독일 뮌헨의 알테피나코테크가 유명하다.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의 국립미술관을 일컫는 내셔널갤러리의 ‘갤러리(gallery)’는 원래 복도, 통로, 발코니 등을 일컫는다. 그런데 왕궁의 복도 등에 미술품들이 걸리다 보니까 갤러리가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최초의 근대 미술관인 우피치 미술관은 예술 후원가로 이름 높은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가 시청격으로 사용하던 우피치궁 3층에 메디치 가문의 르네상스 시대 수집품을 모아놓은 데서 시작한다. 우피치궁이 완성된 건 1584년이나 메디치가의 미술품 수집사는 13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37년 메디치 가의 최후의 계승자인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토스카나 대공국에 미술품을 기증하면서 그녀의 뜻에 따라 일반에게 공개돼 명실상부한 근대 미술관이 됐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다 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등이 유명하다.
소장품 규모로 세계 최대인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은 본래 12세기 센 강변에 건설된 성채였다. 이후 16세기 프랑수아 1세 때 르네상스풍의 화려한 궁전으로 거듭나 그때까지 퐁테뉴블로 성에 있던 다 빈치의 ‘모나리자’ 등의 왕실 컬렉션이 루브르궁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3년 국민의회가 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오늘날의 루브르 박물관이 정식 발족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개관은 영국의 자존심을 건드려 1799년 노엘 데센펀스가 국립미술관을 제안한 끝에 1824년 내셔널갤러리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됐다.
미국 최대의 미술관은 뉴욕 메트로폴리턴 박물관. 186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외교관 J. 제이가 파리에서 한 연설이 계기가 돼 시민 모금운동으로 1870년 임대건물에서 소규모로 개관한 뒤 1880년 센트럴파크의 현 위치로 옮겼다. 유럽의 대규모 미술관과 비교할 때 역사는 짧지만 대부호들의 기증품과 구입품, 탐험에 의한 발굴품 등 학문적으로 귀중한 소장품이 급속도로 늘어 세계 굴지의 미술관으로 발돋움했다. 센트럴파크와 맞닿은 맨해튼 5번가에는 유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등도 모여 있다.
▲미국 국립박물관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흔히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러시아제국의 차르(황제)가 겨울에 거처하던 겨울궁전으로 1762년 완공됐다. 러시아 혁명의 중심지였던 겨울궁전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임시정부가 생기면서 국립박물관으로 출범했다.
국내 최초의 박물관은 1908년 창경궁에서 착공한 이왕가박물관(황실소장유물소장고). 순종이 창경궁으로 옮긴 후인 1909년 11월에 식물원, 동물원 등과 함께 일반에게 공개됐다. 최초의 미술 전문 박물관은 1936년 8월 준공돼 6월에 일반에 공개된 덕수궁 내 ‘이왕가’ 미술관. 일제는 이와 별도로 1919년 경복궁에 근대적 미술관 건물을 짓고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개관했다.
광복 후인 194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됐으며 1946년 3월에는 덕수궁 석조전의 이왕가 미술관이 덕수궁 미술관으로 개칭된 뒤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재출범했다.
박성준기자/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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