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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컬처]"블로그는 우리모습 비추는 거울"

입력 : 2004-07-26 14:29:00 수정 : 2004-07-26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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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오프라인 모임 ''도원결의'' “오∼ 왔어요. ‘화끈작가’님,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지난 24일 오후 6시 서울 인사동의 한 고깃집. 20, 30대 남녀 네 명이 한 남자를 기립박수로 반긴다. 한 여성은 ‘까르르르’ 웃더니 뭐가 그리 좋은지 옆자리를 내놓는다. ‘나의 이상형’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리 반가울 리 없는데, 다들 반갑단다. ‘반가운’ 이유는 직접 얼굴을 맞대서이고, ‘반가울 리 없는’ 이유는 매일 서로 속마음을 엿보고 있는 각별한 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블로거’(Blogger: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다. 지난 4월 30일 ‘도원결의’라는 이름으로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참석 인원은 31명. 그렇게 많은 블로거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작은 ‘사건’이었다. ‘한번 만나보자’는 한 블로거의 도발적인 제의에 의해 시작한 것이 어느덧 네 번째를 맞았다. 이번 만남은 영화관람을 위한 모임.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을 함께 보기 위해 블로거 5명이 자리를 같이했다.
블로그 때문에 만났다지만 공통점이 없다. 관심사도 나이도 제각각이다. ‘러시아 전문가’로 통하는 ‘그루또이’(grutoi.onblog.com) 손요한(32), 블로그 카툰작가 ‘화끈작가’(noblain.onblog.com) 이진형(29), 인테리어 디자이너 ‘헤키’(hekylove.onblog.com) 최원희(27·여), 음악 마니아 ‘함장’(hamjang.kojys.net) 권영준(25),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네라’(nera.onblog.com) 안효민(24)씨가 그들.
이들에게 블로그는 생활이고 일상이다. 매일 다른 사람의 ‘일기’가 나를 울리고 웃긴다. 이는 ‘관음증’을 자극하는 ‘훔쳐보기’는 아니다. 한 차원 높다. ‘감성 공유’를 통해 서로의 틈새를 채워 나간다. 일상에 작은 울림을 주는 ‘화끈작가’씨의 카툰에서, 음악으로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는 ‘함장’씨의 음악에서, ‘러시아’를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엿보는 ‘그루또이’씨의 블로그에서….
“특정 관심거리가 같아서 뭉치는 동호회와 다르죠. 단지 블로그를 한다는 이유로 함께할 뿐입니다. 그게 다죠. 특별한 목표는 없답니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지 않습니까.” ‘헤키’씨가 ‘만남의 목적이 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같이 답한다.
‘사람 사는 것’ 다르지 않기에 블로그 세상에도 충돌이 있다. 항상 이슈가 있고, 그에 따라 주관과 주관이 부딪친다. 내가 쓴 글의 상대방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트랙백(엮인글)’과 무수한 ‘댓글’이 오가며 ‘작은 충돌’이 연쇄반응처럼 일어난다.
최근의 가장 큰 얘깃거리는 동성애 관련 이슈였다. 블로그 서비스 업체 이글루스가 지난 4월 ‘이정우’씨의 블로그 인터뷰 기사를 메인 페이지에 담으려 했으나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이글루스는 이씨에게 “동성애자의 블로그는 블로그 사용자들의 평균적인 사고에 맞추다보니 적절하지 않아 인터뷰를 보류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이에 이글루스 조치의 ‘적절성’을 둘러싸고 블로거들 사이에 한바탕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블로그 토론 문화는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익명 게시판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함장씨의 생각이다. 함장씨는 올해 초 ‘대통령 탄핵 논란’과 관련한 토론에 가세하며 처음으로 블로그에 발을 담갔다.
“블로거들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아옹다옹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합니다. 일상적인 얘기부터 정치적인 얘기까지 모든 걸 받아들여준다는 데 묘미가 있죠.” 이들의 부대낌 속에는 ‘관용’과 ‘열림’이 전제된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해선, 나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도 배웠다. ‘히트(방문자수)’를 올리기 위한 ‘글쓰기’는 생명력이 없다. 자신의 내면에 솔직한 글이라야만 남도 감동시키는 것은 물론 내적인 성숙도 꾀할 수 있다는 것이 그루또이씨의 생각이다.
“처음에는 방문자 수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나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게 신기해서 글을 썼죠. 헌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제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로 귀결돼요.” 모든 블로그를 담는 큰 그림은 그릴 순 없다. 아줌마들이, 영화광들이, 음악 마이나들이 모이는 블로그 서비스 등 작은 흐름들은 생겼지만 아직 모든 블로거들은 이끄는 방향은 없다. ‘블로그는 이래야 한다’는 원론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열린 세계를 이끌어 간다.
블로그가 어디로 향해 갈지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그루또이씨가 잘라 말한다. 그리고 오늘은 다들 보길 원하는 영화감상을 위해 모였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 이상의 의미 부여는 사절이란다. 그에게 블로그는 오프라인에서 여기저기 꽂힌 깃발을 향해 내달리는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다 지친 현대인이 쉬어가는 일종의 탈출구가 아닐까.
우한울기자/erasmo@segye.com

■ ''도원결의''가 추천하는 블로그
▲‘끈가의 일기’(noblain.onblog.com)
인터넷 만화 웹진 ‘핫툰’(www.hottoon.biz)에서 활동 중인 이강룡씨의 블로그. ‘화끈작가’로 알려진 그는 ‘끈가의 일기’라는 코너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생각들을 만화로 표현해 낸다.
▲‘Hof’(www.hof.pe.kr)
인터넷 사이트 기획자 이준식씨의 블로그. 전문가답게 블로그를 기술적으로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 어떻게 채워 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최근 그는 네이버, 엠파스 등 블로그 제공 업체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자들의 글쓰기에 지나치게 깊게 관여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readme’(www.read.or.kr)
웹 칼럼니스트 이강룡씨의 블로그. 그는 사이버 문화에 대해 끊임없는 화두를 던지는 국내 몇 안 되는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인터넷한겨레’ 웹 기획자 출신으로 1년 전부터 대안적인 사이버 문화를 말하는 전업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루또이’(kurutoi.onblog.com)
러시아문화센터에 근무하는 러시아 전문가 손요한씨의 블로그. 그의 블로그는 러시아에 대한 정보, 잘못된 편견 바로잡기 등은 물론 ‘러시아 문화 읽기’ 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러시아 전문사이트 ''그루또이'' (왼쪽)와 이준식씨의 블로그 ''H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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