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유력 신문 알 아크바르가 최근 펴낸 책 ‘파괴의 전야’는 마르완이 1973년 제4차 중동전쟁(10월 전쟁) 직전 이집트와 시리아군의 공격시점을 이스라엘에 알려준 첩자였다고 폭로했다. 이스라엘은 이 첩보에 따라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에 병력을 증강 배치해 최악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은 지난해 9월 이스라엘 신문에도 언급된 바 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아하론 브라그만이 히브리어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라노트에 이를 처음 공개했다.
이집트 공군 고위 간부의 아들이었던 마르완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직전 나세르 당시 대통령의 딸 모나와 결혼했다. 마르완은 나세르 대통령의 1970년 급서로 대통령에 오른 안와르 사다트에게 쿠데타 음모를 알려줘 1971년 5월 15일의 쿠데타 사전 진압에 일등공신이 됐다.
‘파멸의 전야’는 나세르 사망 1년 전인 1969년부터 마르완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접촉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1969년 신병 치료 구실로 런던으로 건너가 모사드와 선이 닿아 있던 유대인 의사와 접촉한 뒤 모사드 관계자들의 철저한 조사를 거쳐 본격적인 첩자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서른살이었다. 마르완은 4년간 모사드로부터 2000만달러의 공작비를 받았다.
이스라엘 사학자 브라그만은 마르완의 첩보가 없었다면 시리아군이 개전 다음날 골란 고원을 장악하고,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논란의 핵심은 이중첩자 역할 여부다. 일각에선 그가 이중첩자가 아니었더라면 이스라엘에 공격 개시 시각을 정확히 알려줬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중첩자였기에 개전시각을 사실과 다르게 흘려줬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중간첩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원래 예정됐던 개전시기는 마르완이 알려준 대로 오후 6시였지만, 이집트와 시리아군의 최종 협의 과정에서 4시간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중간첩설의 진위를 떠나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모종의 간첩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파멸의 전야’가 발간된 뒤 마르완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현재 이집트 최대 무기상이다.
카이로=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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