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는 최근 한국패션협회가 마련한 월드디자이너 프로젝트의 수혜자 3명 가운데 한명으로 뽑히는 행운을 안기도 했다. 월드디자이너 프로젝트는 산업자원부와 서울시가 선정된 디자이너들에게 2∼4년에 걸쳐 각각 4억∼8억원의 해외컬렉션 참가비용을 무상지원,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올해 처음 착수한 사업이다. 진정한 월드디자이너를 꿈꾸는 홍씨로서는 날개를 단 셈이다.
디자인 경력 20년 가운데 13년을 프랑스에서 보낸 홍씨는 프랑스인들조차 놀랄 만큼 정통 프랑스식과 유럽 스타일의 패션 마인드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적인 모티브를 중시하는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독특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복고풍 아방가르드 의상으로 국내 패션에디터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또 그녀에게는 '퓨전 스타일' '믹스와 매치의 명수' 등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서울 신사동의 '엔주홍' 매장에서 만난 그녀는 프랑스에서 다년간 '패션 물을 먹은 티'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담하고 친숙한 한국의 여인상이 짙게 풍겼다.
"저의 작품은 실크나 광목, 포플린 등 전통소재를 사용하되 현대적인 기법을 동원하거나 역으로 손바느질, 손자수 등 옛날 기법을 사용하면서 최첨단 소재를 쓰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소재나 기법의 변형을 통해 전통적인 느낌이 묻어나게 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는 거죠."
현재 그녀가 운영하는 '엔주홍' 매장은 신사동 본점을 비롯해 홍대점 'G', 청담점 '空', 의정부점 'GOZO' 등 네 곳. 이를 기반으로 그동안 서울컬렉션 패션쇼에 매년 봄-가을 두차례씩 참가해 왔다. 지난해 10월과 올 3월에는 두차례에 걸쳐 파리컬렉션에 진출, 현지 매스컴과 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오는 10월에는 세번째로 파리컬렉션에 참가한다.
이화여대 미대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한 홍씨가 패션에 눈을 뜨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반. 대학 졸업 후 인테리어 관련 회사에 다니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진정한 관심이 의상쪽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패션 공부를 위해 늦깎이 파리유학을 택한다. 그녀가 입학한 파리 패션전문학교 '에스모드'는 그녀에게 터닝 포인트를 제공하는 장소가 됐다.
"이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덕분에 1987년 파리의 패션 명가 '크리스찬디올'에 입사, 5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게 됐어요. 외국인으로선 매우 드문 일로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죠."
그녀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1992년 파리에 자신의 브랜드인 '오제' 컬렉션을 설립, 5년간 운영하며 쁘레타 뽀르테 살롱쇼에 세차례 진출하기도 했다.
"겁없이 뛰어들긴 했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실감했어요.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로서 저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가 들더군요."
홍씨는 고국을 떠난 지 13년 만인 1997년 자신의 뿌리를 찾아 귀국길에 올랐다. 그녀의 귀국이 국내 패션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음은 물론이다.
"스스로가 느끼고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는 홍씨는 "소비자들이 내가 만든 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디자이너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어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앞으로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을 생각"이라며 "허황된 생각으로 패션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디자이너의 길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차근차근 공을 들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주문이다.
한국의 패션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재능만이 아니라 재력을 바탕으로 이를 상품화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하다는 것이 홍씨의 지론이기도 하다. 홍씨는 "크리스찬디올이나 샤넬처럼 100년의 전통을 이어갈 토종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초석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여론독자부기자 sksong@segye.com, 사진=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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