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이름인 노먼(해리슨 포드 분)까지도 '사이코'에서 차용한 저매키스 감독은 스릴러의 대가 히치코크를 넘어서려는 야심을 가졌다.
영화의 전반부에 설치한 이웃집 여인과의 관계라든가, 핵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욕조 씬을 보면, 그가 '이창'이나 '사이코'같은 히치코크의 영화를 크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교적으로만 보면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적 기교는 그것만으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저메키스 감독에게는 창조적 상상력이 없다.
노먼 박사 부부는 호수가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먼저 문제를 일으키는 쪽은 부인 클레어(미셸 파이퍼 분)이다. 그녀는 옆집 여자가 살해되었다고 믿는다. 물론 미셀 파이퍼의 시점을 따라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관객들은 그녀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매키스의 함정이다. 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내부의 적. 이것은 빈번하게 사용된 공식이다. 특히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 들면서 너무나 낯익은 헐리우드의 상투적 액션물로 전락한다.
'왓 라이즈 비니스'에서 취할 것이 있다면 물에 관한 상상력이다. 클레어가 욕조에 가득찬 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나 거울을 보고 있을 때 슬며시 그 옆으로 떠오르는 죽은 여자의 환영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일상적 진실의 수면 아래 잠복해 있는 또 하나의 진실, '왓 라이즈 비니스'의 서사구조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킨다. 합리적 실증주의에 길들여져 있는 서구인들에게 초자연적 현상의 존재를 강조하며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식스 센스'의 시스템을 시류에 민감한 저매키스 감독이 재빠르게 빌려왔다.
다만 유령을 물의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영화의 주공간이 호수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독창적 이미지도, 기교의 새로움도 없는 '왓 라이즈 비니스'는 당연하게 우리를 존재의 깊은 바닥까지 닿게 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영화는 극장 내부의 불이 꺼져 있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 내면에 또 하나의 집을 짓고 들어와 살게 해줘야 한다.
(영화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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