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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장지휘관·상황실에 전화 빗발쳐 … 그새 희생자는 늘어갔다 [제천 화재 1년,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나]

입력 : 2018-12-20 19:02:22 수정 : 2018-12-21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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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 만에 도착한 선발대 13명 / 눈앞에 불끄기도 벅찬데 무전기 먹통 /‘골든타임’ 대원 지시할 지휘관 휴대폰 / 언론·소방청·정부·지자체 전화로 불나 / 상황실도 靑 등 보고요청 응대로 마비 / 유족 “초기판단 잘못” 법정공방 /‘가스폭발 막느냐, 인명구조 수색이냐’ / LPG 탱크 먼저 선택한 지휘관에 뭇매 /“현장 전반 문제 도외시한 채 책임 추궁” /‘죄인 낙인’ 일선 대원들 분통 터트려 / 지휘관 역량 강화 훈련 태부족 / 최선의 판단 위해 지휘훈련 필수인데 / 소방위 ‘업무 과중’ 교육 참여율 저조 / 2019년부터 2만여명 현장 소방관 충원 / 지휘역량강화센터도 5곳 추가 설치
2017년 12월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의 무전기는 먹통이었다. 상황실은 쏟아지는 전화로 마비됐다. 건물 안 상황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눈앞의 불을 끄느라 출입금지용 파이어 라인을 치고 외부인을 통제할 인력조차 없었다. 무전기가 안 되자 현장지휘관의 휴대전화가 쉴 틈 없이 울렸다. 상황실의 상황전파뿐만 아니라 언론사, 지인, 소방청, 행정안전부, 충북도, 제천시 등으로부터 연락이 쏟아졌다.
2017년 12월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후 3시48분 시작된 불은 4시간 가까이 건물을 삼킨 뒤 오후 7시30분 간신히 진화됐다. 29명의 사망자와 40명의 부상자를 낼 정도로 인명피해가 컸던 까닭으로는 △부실한 소방안전관리 △출동을 방해한 불법 주정차 △부족한 소방력·장비 △무선교신 먹통 등이 꼽힌다. 화재예방에서 화재진압, 구조, 사후 대응까지 관계 당국은 비난을 피할 곳이 없었다. 화재진압·구조 작전 당시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유가족과 소방 당국의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이지만,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은 “또 다른 희생을 막으려면 현장지휘관 역량을 강화하고 지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기 대응 때 전화통화 금지를… 과도한 지시·보고 줄여야

“사고 발생 초반에는 현장지휘관 개인 휴대전화를 압수라도 해야 합니다. 힘 있는 기관에서 걸려 오는데 어떻게 전화를 안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천소방서 소속으로 지난해 화재진압 작전에 투입된 A씨는 한국화재소방학회와의 면담에서 현장 상황보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화재소방학회는 소방청의 의뢰로 지난 5월부터 석달 동안 제천 스포츠센터·밀양 세종병원 등 최근 일어난 대형 화재사건에서 드러난 소방대응 문제점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학회 연구팀은 제천·밀양 소방서 대원들을 면담했다. A씨는 “직접 관계가 없는 타 부처에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개인 연락처로 전화가 왔다”며 “혹시나 전화를 못 받으면 질타했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 있던 B씨는 “지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지휘관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판단해 소방대를 지휘해야 하지만, 당시 현장 지휘소는 물자 배분·언론 대응·VIP 방문 응대 등으로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웠다”며 “화재 현장만큼 중요한 상황실은 청와대와 소방청 본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관련 기관들의 각기 다른 상황 전파 요청 때문에 소방대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현장지휘관은 “당시 드러난 문제점은 도외시한 채 무조건 소방대원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다음에 또 목숨을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겠냐”며 “인명구조를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안 하는 소방관은 없다”고 토로했다. 
참사 1년 상흔 간직한 건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6일 불에 그슬린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지붕에 흰 눈이 쌓여있다.
제천=뉴시스
◆초기 현장지휘관 지휘능력 강화 급선무… 훈련 프로그램 내실화·시간 확보 필요

신고를 받고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는 LPG(액화석유가스) 탱크 폭발 방지와 인명구조 수색의 두 가지 상황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고드름을 제거하러 간 구급대가 늦게 오는 바람에 당시 지휘관은 제한된 소방력을 LPG 탱크 폭발 방지에 투입했다. 제천 화재 유족들은 당시의 판단이 틀렸다며 법적 책임을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다.

소방현장 대응 문제점을 분석한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함은구 교수(재난소방학과)는 “현장지휘관은 옳은 결정보다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며 “최선의 판단을 위해서는 충분한 교육·훈련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이를 충족할 조건과 환경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소방학교의 올해 지휘역량교육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현장지휘관(소방위·소방경·소방령) 중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소방위(119안전센터장급)에 대한 지휘역량 강화 훈련 비중이 가장 작았다. 소방령과 소방경은 연간 480명이 1년 동안 나눠서 지휘역량교육을 받지만 소방위는 80명에 불과했다. 대전소방본부 소속 선착대 현장지휘관 78명 중 소방위 현장지휘과정 전문 교육을 이수한 인원은 12.8%(10명)에 그쳤다. 교육 이수율이 낮은 까닭에 대해 소방대원들은 면담에서 “현장업무 외 남는 시간에는 행정업무를 처리하기도 바쁘다”며 “지방에서는 인원도 부족해 안전센터 단위 훈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중앙소방학교의 지휘역량교육을 받으러 2∼3주씩 자리를 비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방에서는 센터장이 부재한 야간이나 주말에 부센터장인 소방장이 선착지휘관 역할을 담당해야 하지만 이들에 대한 현장지휘 훈련과 교육 프로그램은 부재하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내년부터 2만명이 넘는 소방관이 충원되면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가 다소 해소될 것”이라며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운영 중인 재난현장지휘역량강화센터를 권역별로 5곳 추가 설치해 현장지휘관의 역량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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