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찾은 전남 순천시의 구도심인 장천동 궁전예식장 부근은 ‘남도의 봄’을 옮겨놓은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4차선 도로변의 너비 2m, 길이 80m 크기의 ‘한평공원’에는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70대 할머니 4∼5명이 가던 길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봄꽃 향기를 맡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 |
전남 순천시 조례동 백운가든 옆 자투리 땅에 폐변기 등을 활용해 만든 소공원에서 주민이 화초를 심고 있다. |
이 같은 ‘한평공원’은 반경 1㎞ 이내의 도로변과 골목길에 3곳이나 더 있다. 여기서 불어오는 봄꽃 향기는 삭막한 도심을 훈훈하게 녹이기에 충분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상가와 주민들이 신도심으로 떠나면서 공동화 현상을 보인 뒷골목이었다. 빈집이 늘어나면서 후미진 구석에는 폐자재 등 생활쓰레기들이 넘쳐났다. 수거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이 일대는 도심 속 흉물로 변했다. 하지만 3년 전 소공원이 조성되면서 주민들의 쉼터로 되살아나고 있다.
도심 속 버려진 자투리땅과 공한지에 소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이 확산되고 있다. ‘한평 공원’이 도심의 열섬과 우범지대를 해소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공한지·자투리땅에 소공원 만들기 열풍
한때 도심 속 공한지와 자투리 땅은 골칫거리였다. 누군가가 이곳에 생활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면 ‘깨진 유리창 효과’(깨어진 유리창을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점점 슬럼화가 진행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처럼 금세 쓰레장으로 돌변했다. 여름철에는 악취가 진동해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이 같은 곳을 소공원으로 바꾸는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순천시는 3년 전부터 ‘한평 정원 가꾸기 범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2년 여수박람회 때 순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생태도시 순천’을 알리기 위해 시작됐다. 이 사업은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앞두고 정원도시 만들기로 발전했다. 자투리땅과 공한지에 ‘한평 정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든 시민이 참여했다. 당시 20여개의 소공원이 조성됐다. 2013년에는 60곳, 지난해에는 30곳이 추가로 생겨났다.
![]() |
전남 순천시 정천동 궁전예식장 앞 자투리 땅을 이용해 만든 소공원에서 시민들이 잡초를 뽑고 있다. |
전남 신안군은 7년째 ‘사계절 꽃피는 섬’을 추진하고 있다. 관광객이 배를 타고 내리는 선착장과 관광지 도로변의 자투리땅에 소공원을 만들고 있다. 신안군의 섬 개수만큼인 1004개의 소공원을 조성했다. 신안군은 매년 30만∼40만본의 다년생 꽃을 생산해 14개 읍·면에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읍·면에서는 소공원에 꽃을 심어 사계절 내내 꽃피는 천사의 섬을 만들고 있다. 신안군 농업기술센터가 묘목을 직접 재배해 예산을 크게 줄이고 있다. 겨울철인 11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꽃을 피우는 진자주 국화꽃을 개발했다.
소공원 조성 활성화를 위해 조직을 신설하는 지자체도 있다. 경남 산청군은 지난해 녹색담당계를 신설했다. 이 부서는 가정 정원 17곳, 마을 정원 12곳, 읍·면정원 46곳 등 75곳의 소공원 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 |
전남 순천시 해룡면 상삼리 자투리 땅을 이용해 만든 공원에서 주민이 물을 주고 있다. |
지자체가 조성하는 소공원 부지는 주로 자투리땅이나 공한지다. 면적은 10∼500㎡ 정도다. 계절마다 화사하게 피는 꽃을 주로 심는다. 한 곳의 소공원을 조성하는 데 드는 예산은 3000만∼5000만원 정도. 소공원 주변에는 휴식과 운동을 할 수 있는 의자와 체육기구들이 갖춰져 있다.
제주도는 도로변의 자투리땅에 지역의 대표 브랜드인 유채꽃을 매년 파종해 색다른 멋을 내고 있다. 제주 서귀포 안덕면 산방산 일대에 지난해 1억4000만원을 들여 일주도로변에 명품 꽃길을 조성했다.
옛 학교 부지에 소공원을 조성하는 학교공원화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충북 청주시는 지난해 1억원을 들여 일신여고 옛 건물 부지를 숲 공원으로 바꿔놓았다. 충북대 중문지역 산책로에 소공원이 조성되면서 인근 산업단지 녹지대와 연계해 주민휴식 공간으로 거듭났다.
![]() |
광주 지산동 성당 인근의 청소년 탈선 장소가 소공원으로 탈바꿈해 있다. 소공원 조성 전과 조성된 후 모습. |
◆우범지대가 꽃동네로…도심 열섬까지 완화
소공원 조성으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도심의 뒷골목이 환해졌다는 점이다. 대전시 동구 삼성동 제일경로당 앞의 공한지는 평소 을씨년스러워 노인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곳이었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밤늦게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름철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비가 올 때에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동구는 지난해 이곳에 6000만원을 들여 느티나무 366그루를 심고 의자와 체육시설을 설치했다. 공한지는 경로당 노인들의 쉼터로 변신했다. 주민 이모(75)씨는 “보기 흉하고 무서웠는데 공원으로 조성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우범지대에 소공원이 들어서면서 범죄도 줄고 있다. 구도심인 광주시 동구 지산동 뒷골목은 대낮에도 어둡고 인적이 드물어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알려져 있다. 청소년들의 패싸움이 잦아지면서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이 같은 우범지대를 바꾼 것은 소공원이었다.
광주시는 5000만원을 들여 좁은 골목길의 담장을 허물었다. 사방을 확 트이게 한 후 소공원을 조성해 소나무와 맥문동을 심었다. 우범지대가 시민들의 쉼터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관광지에 조성된 소공원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경남 산청군 생초면 경호강은 아름다운 호수 비경과 민물고기를 잡는 체험을 위해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20여곳에 달하는 민물고기 식당 앞의 공한지가 수년간 방치되면서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해 산청군은 9000만원을 들여 공한지에서 마을 입구까지 1㎞ 구간에 소공원을 조성했다. 계절마다 화초와 홍가시나무를 심어 꽃길을 단장했다.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북 포항시 청림동 포항특정경비사령부 인근의 소공원은 관광상품으로 손색이 없다. 포항시는 2억원을 들여 사령부 인근에 ‘몰개월 비행기소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퇴역 비행기’ 6대가 설치된 곳에 관람에 필요한 소공원을 만들고 있다. 소공원 옆에는 해군 6전단의 비행기박물관이 있어 소공원과 더불어 호국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울산시는 매년 도심의 소공원을 확대하면서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울산시 1인당 녹지면적은 16㎡로 전국 7대 광역시 가운데 가장 넓다. 지난해까지 자투리땅에 조성된 소공원은 18개로 16만㎡에 달한다. 올해는 21곳에 7만㎡의 소공원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소공원의 녹지대가 공단에서 뿜어나오는 열기를 식히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순천=한현묵·한승하 기자 hanshi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