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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日 역사인식 담은 담화 살펴보니

입력 : 2015-03-22 20:33:23 수정 : 2015-03-22 22: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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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50여년간 日 정부 공개사죄 없어…1995년 ‘무라야마담화’서 첫 “통절한 반성”
일본이 경제적 약진을 이어가고 한국과 중국 등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저조하던 1980년대까지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 정부 차원의 공개적인 사죄 표명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냉전(冷戰)체제가 종식된 1990년대 들어서 한국과 중국 등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은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게 됐고 역사인식을 담은 담화를 차례로 내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한 담화로는 전후 50주년인 1995년 사회당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주도해 발표한 ‘무라야마담화’가 우선 꼽힌다.

무라아먀 총리는 담화에서 “일본은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책을 그르쳐 (중략)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 큰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고 밝혔다. 총리 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이라는 표현이 처음 포함됐다.

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종전 60주년이 되는 2005년 “국책을 그르쳤다”는 일부 표현은 뺐지만 무라야마담화에서 사용된 ‘식민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의 뜻’ ‘마음으로부터 사죄’ 등 핵심 문구를 그대로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2010년 대한제국 강제합병 100년을 맞아 ‘간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간 총리는 “3·1 독립운동 등에서도 드러났듯이 당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뜻에 반한 식민지배로 인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겼다”고 표현해 한국 식민지배의 불법 강제성을 인정했다.

총리 담화는 아니지만 관방장관이 낸 가토담화(1992)와 고노담화(1993) 등도 주목해야 한다. 가토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관여를 처음 인정했고, 고노담화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했기 때문이다.

무라야마담화와 간담화, 고노담화 등의 역사인식 담화들은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무라야마담화)는 표현처럼 그간 일본이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과 우호를 유지해가는 출발점이 돼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도쿄=김용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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