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박사는 경매 전시장으로 달려가 실물을 확인했다. 그림은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종이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고, 군데군데 찢기고 더럽혀진 상태였다. 작품을 거는 줄은 이미 끊어져서 남아 있는 지승(紙繩·종이 실)에 녹슨 철사를 이어 놓았다.
작품 뒤 아랫부분에 덧붙여진 종이를 자세히 보면 검정 볼펜으로 ‘동국 초대 총장. 20만(万)’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이 작품이 시장을 전전하는 가운데 어느 골동품 상인이 20만원에 산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억하기 좋게 작품 뒤에 샀을 때 가격을 직접 써넣는 것은 상인의 행동이다.
이 박사는 “그림 속 주인공은 쇠백로이고, 바닷가 섬마을은 그 배경에 불과해 단순한 산수화가 아니다”며 “새에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한 문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고려의 전형적인 문인화풍이라는 얘기다. 세밀한 필선과 입체감 있는 먹처리는 몰골기법(沒骨技法·동양화에서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물감을 찍어서 한 붓에 그리는 화법)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해 수작이란 평가다.
한 중진 미술사학자는 “실물 고려 그림이 빈곤한 상태에서 고려수묵화의 발굴은 고려미술사 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는 “당시 화가들은 그림에 자신의 서명이나 날인을 하지 않고 그림과 관련된 시를 썼다”며 “이런 형태로 보아 북송 화풍에 영향을 받은 고려 그림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원로 교수는 “진위는 고증을 거쳐야 확신할 수 있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한 발굴”이라면서도 “이 박사가 그동안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많이 해 신빙성엔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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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수묵화로 추정되는 ‘독화로사도’. 이동천 박사 제공 |
편완식 선임기자, 정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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