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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역사의 시작과 끝…'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 남산

입력 : 2013-02-14 21:41:23 수정 : 2013-02-14 2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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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역사의 시작과 끝을 오롯이 지켰다
경북 경주에는 ‘보물산’이 있다. 산 능선과 골짜기 곳곳에 보물이 깃들어 있다. 높이는 494밖에 안 되고, 남북 8㎞, 동서 4㎞이니 덩치만 보면 내세울 게 없다. 그러나 이 아담한 산에 1000년도 훨씬 넘는 시간과 만날 수 있는 신라시대 유적이 가득하다. 확인된 절터만 150곳이고 불상은 129기, 탑은 99기에 달한다. 그래서 ‘지붕 없는 박물관’ ‘노천 박물관’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찌감치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바로 경주 남산이다. 2월의 산행은 심심할 수 있다. 웬만한 높이의 산은 눈이 녹기 시작해 설경이 그다지 빼어나지 않고, 봄꽃이 피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이럴 때 그림지도 한 장 들고 천년 고도의 유적을 찾아보는 산행에 나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런 것을 가리켜 ‘보물찾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 수많은 불상 만나는 삼릉∼용장골 산행

경주 남산은 서라벌 궁성인 월성(月城) 남쪽에 자리 잡아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경주에는 평지에도 국보급 문화재가 워낙 즐비하다 보니 남산은 관광객의 시선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이곳의 참모습이 알려지며 남산을 목적지로 정해놓고 경주를 찾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남산에서 가장 일반적인 산행코스는 삼릉에서 냉골을 거쳐 용장골로 내려오는 길이다. 남산의 두 봉우리 중 하나인 금오산(468m) 정상을 넘으며 가장 많은 불상을 볼 수 있다.

삼릉에서 오르면 처음 만나는 불상인 얼굴 잃은 석조여래좌상.
서남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산 안내소에서 그림지도를 받아 길 건너 소나무숲을 지나니 삼릉이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 잠든 봉분 셋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곳이다. 삼릉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불상은 석조여래좌상. 가슴이 넓고 목 주름 등이 박력 있게 표현돼 7∼8세기 신라 불상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목과 얼굴이 없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이 남긴 상흔이다. 석조여래좌상 위에는 아담한 마애관음보살상이 자태를 뽐낸다. ‘미스 신라’로 불리는 이 불상은 입술이 연지를 바른 듯 붉다. 붉은빛이 도는 돌에 입술을 새긴 신라 석공의 감각이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불상으로 평가받는다.
세 번째 만나는 불상은 선각육존불. 널찍한 바위에 선으로 여섯 불상을 새겼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선각 여래좌상을 지나 계곡을 따라 더 올라가면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이 언덕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통일 직후에 볼 수 있는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을 지닌 불상으로, 지금의 미끈한 외관을 자랑하기까지 세 차례 복원 작업을 거쳤다.

경주 남산의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장대한 암벽에 새겨져 있다.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튀어나오다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입체감이 뛰어나다.
이어 절벽을 깎아 만든 장대한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만나게 된다.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튀어나오다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마애불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바둑바위에 이른다. 대릉원 등 경주의 주요 문화유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금오산 정상으로 향하게 된다. 이때 뒤를 돌아다보면 마애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줘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한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경주 남산 산행에서 첫손에 꼽히는 명소다. 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석탑 뒤편으로는 장쾌한 전망이 펼쳐진다. 산 아래 용장골에서 올려다봐도 석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 우리 땅에서 가장 높은 석탑을 만나다


금오산 정상을 지나면 용장사지까지 가파른 하산길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물 186호)에서 남산 탐방의 감흥은 절정에 달한다. 별도의 기단이 없는 이 탑의 높이는 4.5m. 경주 사람들은 이 탑을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부른다. 해발 380m 산허리를 기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석탑 바로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고, 그 밑으로 용장계곡의 유려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탑이 딛고 선 자리가 참 절묘하다는 사실은 계곡 아래로 내려가서야 뒤늦게 알게 된다. 삼층석탑 아래 삼륜대좌불을 지나면 매월당 김시습의 발자취가 서린 용장사지다. 김시습은 용장사에 7년간 머물며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한다.

산을 내려와 용장계곡에서는 꼭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다봐야 한다. 계곡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 듯한 석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1000년 전 신라인들은 산 아래서 올려다봤을 때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을 계산해 석탑을 세웠던 것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서라벌을 ‘절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寺寺星張), 탑들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늘어서 있다(塔塔雁行)’고 묘사했다. 남산의 모습이 그랬다.

경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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