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안전청에 체포된 후 114일 동안의 강제구금에서 풀려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그가 한국땅을 밟은 뒤 한 말이다. 1980년대 주체사상을 전파하던 ‘강철서신’의 주인공 김씨의 눈은 구금생활로 흐트러질 만도 하건만 초롱초롱 빛났다. 그는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멀리 있는 나라도 노력하는 마당에 동포로서 노력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또 “이를 부당하게 탄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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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함께 서울에 중국에 구금됐던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일행이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김씨 일행은 지난 3월말 랴오닝성 다롄에서 탈북자 관련회의를 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연합뉴스 |
중국 정부는 구금 초기 김씨 일행에게 최고 사형에 처하는 국가안전위해죄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대북 인권활동가를 뿌리 뽑기 위한 강경 조치였다. 김씨와 A(43)씨, B(41)씨, C(31)씨 등 4명은 지난 3월29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공안에 체포된 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기관인 단둥의 국가안전청에 구금됐다. 국가안전부는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중국이 이들에 대해 국가안전위해죄를 적용하겠다고 한 것도 인권운동가들에 의한 북한 흔들기를 막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무례는 중국의 부총리급 실세인 멍젠주(孟建柱) 중국공안부장의 방한으로 극적인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지난 12∼14일 한국을 방문한 멍 부장은 김성환 외교부 장관, 권재진 법무장관, 원세훈 국정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김씨 신병처리에 대해 “한·중 관계를 감안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한·중 간 석방협상은 급물살을 타고, 결국 김씨 일행은 구금 114일 만인 20일 오후 석방돼 한국땅을 밟았다.
외교가 일각에선 김씨 일행의 신병처리 문제가 일본대사관 화염병 투척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국인 류모씨의 신병처리와 연계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씨 일행의 석방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왜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됐는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중국은 물론 우리 당국도 함구하고 있다. 추방 형식을 빌려 김씨 일행을 한국으로 보낸 만큼 한·중 정부가 서로 침묵을 지키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중국 내 활동이 국가정보원이나 미국의 지원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김씨가 북한 내 자생적 반체제 조직과 인사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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