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세번째 ‘안방 노메달’ 수모…2009년 비교해 나아진게 없어
한국신기록 4개가 그나마 소득
제13회 대구세계육상대회에 개최국 한국은 없었다. 들러리에 불과했다. 대구세계대회에 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 진출자를 내겠다는 ‘10-10’ 목표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9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육상 대표팀은 ‘2-10’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쥐었다. 경보에서만 10위 이내에 진출했을 뿐이다.
대구대회 출전 202개국 가운데 다섯번째로 많은 60명(남 33, 여자 27명)의 선수를 내보낸 개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국은 스웨덴(1995년)과 캐나다(2001년)에 이어 세번째로 ‘노메달 개최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부진의 심각성이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대구대회는 한국육상의 초라한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남자 멀리뛰기에 출전한 한국신기록 보유자 김덕현(26·광주광역시청)만이 11위로 결선에 올랐다. 그러나 김덕현은 왼쪽 발목 부상으로 결선무대를 밟지 못했다. 한국육상은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준비를 많이 했고, 28년 만에 첫 메달도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19명이 출전해 한명도 톱10에 들지 못한 2년 전 베를린 세계대회와 비교하더라도 나아진 게 없다.
한국육상이 2009베를린대회에서 부진을 보임에 따라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011대구대회를 앞두고 강도 높은 개혁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키려 했다. 그 결과 지난해 남자 100m 한국신기록이 31년 만에 깨지고,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금 4개, 은 3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등 내심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자신감에 부풀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최고의 경기력을 떨쳐야 할 이번 대구대회에서는 기 한번 펴보지 못하고 움츠러들고 말았다. 대회 폐막일인 4일 열린 남자 마라톤에는 출전 5명의 선수가 모두 중위권으로 밀렸고, 번외경기인 단체전에서도 6위에 머무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육련은 육상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리기 어려웠다고 해명하지만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못했고, 확실한 기대주를 양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선수 저변이 얕은 탓에 이름값을 해줘야 할 정순옥(여자 멀리뛰기), 지영준(남자 마라톤)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연맹의 선수 관리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그나마 수확이 좀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한국 신기록이 4개나 나왔기 때문이다. 김덕현이 건재함을 과시한 데다 박봉고-임찬호-이준-성혁제로 구성된 한국남자 1600m 계주팀이 예선에서 한국신기록(3분04초05)을 세운 것은 큰 소득이다. 조 최하위에 그쳐 예선탈락했지만 20∼21살의 유망주로 구성된 점을 감안하면 앞날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여호수아-조규원-김국영-임희남이 이어 달린 400m 계주팀도 1라운드에서 한국신기록(38초94)을 작성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남자 10종경기에서 가장 먼저 한국신기록을 세운 김건우(31·문경시청)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스포츠강국 한국이 가장 취약점을 보이는 종목이 바로 육상이다. 육상에서 유독 약점을 보이는 것은 그간 제대로 된 선수 육성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세계대회를 앞두고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는 등 ‘벼락치기’ 투자를 했지만 효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한국육상의 경기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선수발굴과 훈련’이 절실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대구=박병헌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