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세르비아 폭격 계기로 신나치 운동 적극가담 25일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브레이비크는 학창 시절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긴 했지만 소극적인 편이었으며 보통의 학생들과 비슷했다고 전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국왕 하랄 5세가 한때 다녔던 엘리트 고등학교에 다닐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성격은 조용한 편이었지만 똑똑했다”며 “다만 반항적인 구석이 있었다”고 그를 기억했다. 그가 고교생 말기에 진보당 청년조직에 가입하기는 했지만 거의 활동하지는 않았다고 그의 친구들은 말했다. 그는 1990년 후반 나토의 세르비아 폭격을 계기로 이슬람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극우주의자로서 신나치운동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친구들은 “브레이비크가 노르웨이 등 유럽지역으로 건너오는 이슬람인들을 배반자로 인식하며 극단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이슬람 비판 성향의 사이트인 ‘도쿠멘트’에 글을 수시로 올리고 반이슬람 운동 포럼에서 활동하며 이슬람 이민자에게 반감을 드러냈다.
김채연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