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간 '협력·견제 애증관계' 계속될 것"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21일 애플의 삼성전자에 대한 스마트폰 특허침해 소송을 놓고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밝힌 지 하루 만인 22일 삼성전자가 애플을 전격 맞제소했다.
삼성의 입장에서 애플은 작년까지 최대 고객이었던 소니를 제치고 올해 가장 큰 구매처로 등극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애플로서도 삼성전자의 핵심 부품이 없으면 스마트폰 등의 제조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맞소송을 계기로 양사 협력 관계에 금이 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으나, 업계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전자·IT 업계의 관행을 떠올리며 앞으로도 글로벌 메이커 간 상호 협력과 견제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 "튀어나온 못 때리면 우리도 망치 든다" = 이 회장은 21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42층 집무실에 처음 출근한 뒤 기자들과 만나 "애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로 다음 날, 또 애플이 지난 15일(현지시각) 삼성전자를 제소한 뒤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일주일 만에 애플을 전격 제소했다.
이는 이 회장의 이례적인 출근이 삼성 주요 계열사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세무조사나 호텔신라[008770]의 한복 출입 금지 사태, 애플의 삼성전자 제소 등 최근 삼성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대응을 주문하는 등 그룹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한 행보였음을 뒷받침한다.
이번 제소는 삼성 각 사업 분야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이 그만큼 커져 견제 또한 그만큼 심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초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2를 출시하면서 삼성을 '카피캣'(모방자)이라고 모욕하고 삼성전자 임원을 조롱했을 때만 해도 직접적인 대응을 삼가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라는 점에서 구태여 애플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애플의 '말'이 아닌 '행동'에 대해 삼성전자가 즉각 대응한 것은 양사 관계가 사안에 따라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작년 삼성전자의 매출 비중은 소니(4.4%), 애플(4.0%), 델(2.2%), HP(2.1%), 베스트 바이(2.0%) 순으로 53억달러(6조원) 어치를 사간 소니가 50억달러(5조7천억원) 안팎을 사들인 애플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애플은 올해 삼성전자로부터 78억달러(8조6천억원) 상당의 부품을 사들여 60억달러가량을 구매할 것으로 보이는 소니를 처음으로 제치고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칩, 디스플레이 등 애플의 가장 중요한 부품 공급업체로,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두뇌에 해당하는 칩을 만들고 있고 'A4' 칩의 유일한 공급 업체이다.
또 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업체로부터의 부품 공급이 원활해지지 않으면서 삼성전자에 납품 물량을 늘려줄 것을 비공개리에 요청했다는 말도 나온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애플의 제소에 대해 신속하고도 즉각적으로 맞불을 놓은 것은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카피캣 모욕'에 이어 소송에도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갤럭시S2의 출시를 앞두고 애플의 '노이즈 마케팅'에 말려 시장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 발언에 대해 "전자를 비롯한 화학, 전지 등의 그룹 계열사가 각 영역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잘해왔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잘하면 잘할수록 당연히 견제가 더 심해질 것이므로 잘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 거듭하는 전자·IT 업계의 애증 관계" = 이 회장은 애플의 소송을 '튀어나오는 못을 때리려는 원리'라고 밝히면서 "기술은 앞서가는 쪽에서 주기도 하고, 따라가는 쪽에서 받기도 하는 것인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술을 선점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전자, 자동차, 가전 등 모든 사업 분야에서 업체 간 이합집산이나 애증 관계 표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애플 등 경쟁 업체뿐 아니라 각종 '특허괴물' 등의 소송까지 잇따르는 것은 물론 자극적인 언사를 동원한 비방전도 난무한다.
미국 월풀사는 최근 삼성·LG전자[066570]가 냉장고를 덤핑 판매하고 한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해 미국 상무부가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사에 착수했다.
노키아는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소송에서 최근 패소한 뒤 곧바로 휴대전화와 MP3, 태블릿PC, 컴퓨터 등 전 분야에 걸친 특허침해 소송을 다시 제기하는 한편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팟터치 기술이 자사의 특허를 훔친 것이라며 소송을 낸 상태다.
애플과 모토로라 간 법정 공방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3D TV 기술 방식을 놓고 SG(셔터글라스)-FPR(필름패턴 편광안경) 싸움을 벌이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해외 업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제휴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앞서 소니가 LG[003550]로부터 TV용 LCD 패널을 공급받다가 삼성전자와 손을 잡자 당시 LG필립스LCD의 구본준 부회장(현재 LG전자 부회장)은 "옆집 여자와 바람난 격"이라는 등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 관계이면서 서로 부품을 대고 공급받는 협력 관계이기도 한 전자·IT 업계의 소송과 홍보전, 이합집산은 점점 예삿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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