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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르는 게임중독> ① "게임 없인 못 살아"

입력 : 2010-11-19 09:47:40 수정 : 2010-11-19 09: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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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 하던 모범생 게임에 빠져 바닥권 추락
스마트폰도 게임중독자 양산..성인들까지 과몰입

"게임중독 예방과 치료 위한 별도 기금 만들어야"
김모(18) 군 가정은 3년 전까지만 해도 평온했다.

의사인 아버지와 집안일을 꼼꼼히 챙기는 어머니, 두 살 위인 누나 등 네 식구는 주위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화목하고 단란했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1∼2등을 다투던 김군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게임에 빠져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김군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2년 전부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리니지'에 빠지면서 불행은 시작됐다.

학원 대신 PC방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집에 와서도 마우스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반에서 수위를 다투던 성적이 1학기가 끝나갈 즈음 중위권까지 떨어지자 김군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어머니에게 "200만원만 주면 강력한 게임 아이템을 사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 게임을 끊겠다"며 돈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돈을 주고 산 아이템으로 김군의 캐릭터는 더 강력해졌지만 그럴수록 게임에 더 빠져들 뿐이었다.

결국 그는 성적이 바닥권까지 떨어졌고 2학년이던 작년에 학교를 중퇴하고 지금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김군은 게임에 빠져든 것을 후회하고 있지만 지금도 가끔 PC방에 간다.

◇ 청소년 10명 중 1명 게임중독증

부산에서 게임중독에 빠진 중학생이 자신을 나무라는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16일 발생했다.

올해 설 연휴에는 20대 남자가 게임을 그만 하라고 꾸중하는 어머니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고, 닷새 동안 PC방에서 온라인게임에만 몰두하던 30대 남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작년에는 인터넷게임 등으로 가정에 소홀하다는 꾸중을 들은 20대 남자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인터넷 게임에 빠진 부부가 생후 3개월 된 갓난아기를 굶겨 죽인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있었다.

인터넷 게임중독이 단순히 한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 강력사건으로 이어지는 사례까지 속출하는 것이다.

각종 실태조사는 게임중독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심각하게 침투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09 인터넷중독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만 9∼19세) 인터넷 중독자는 93만8천명에 이른다. 전체의 12.8%에 이르는 엄청난 수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과 관련해 청소년상담원의 상담을 받은 청소년은 2007년 3천440명에서 2008년 4만706명으로 13배 정도 늘어난 데 이어 2009년에는 4만5천476명에 달했다.

1990년대 후반 '스타크래프트'를 앞세워 불어닥친 인터넷 게임 열풍이 동네 구석구석까지 뻗어간 PC방을 혈관 삼아 10여년 만에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에 대한 몰입은 우등생과 열등생을 가리지 않는다는 게 일선 학교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안양 부흥고 송지연 교사는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 중에는 밤새 게임하고 학교에서는 온종일 잠자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면서 "남학생의 경우에는 공부를 잘한다는 학생들도 대부분 PC방에 가서 게임을 한다"고 말했다.

한부모 가정 등 자녀에게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한 가정의 경우에는 게임중독 성향이 더 심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실태조사 결과 한부모 가정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16.6%로 양부모 가정(12.6%)보다 31.7% 높았다.

시각 장애인인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최모(13.중1) 군도 그런 경우다.

방과 후에는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 모른다.

어머니가 만류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게임에만 몰입한다.

상담을 받아보자는 어머니의 제안에도 "나는 아무 문제 없다. 재밌으니까 게임을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쏘아붙일 뿐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부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의 이은실 상담사는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은 그래도 부모가 신경을 쓰는 경우"라며 "한부모 가정 등 자녀를 챙길 여력이 부족한 가정의 경우에는 아예 방치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게임 과몰입 성인도 증가세

청소년에만 한정되는 것으로 여겨지던 게임중독이 요즘에는 성인에게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청년 실업자나 불황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컴퓨터 판매점을 하는 최모(42) 씨는 2년 전부터 불황으로 사업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컴퓨터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시간이나 때우자'며 시작한 게임이었지만 금세 빠져들었다.

온라인게임인 '대항해시대'와 '리니지'가 그의 온 신경과 손을 옭아맸다.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서도 게임은 멈출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인 남매가 숙제를 도와달라고 해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최씨는 더 이상 그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내의 손에 이끌려 인터넷중독 상담센터를 찾기에 이르렀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실태조사에서 20∼30대 성인 중독자는 97만5천명에 이르러 중독률이 6.4%에 달했다.

40대 이상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들도 대부분이 인터넷을 접하고 있는 이상 게임중독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마트폰 대중화도 게임중독자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모(45) 씨는 "지금까지 게임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던 아내가 아이폰을 통해 게임을 접한 뒤 새벽까지 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잦아졌다"면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문제"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국내 온라인 게임의 시장 규모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 예방과 치료에 관한 예산은 12억여원에 불과하다"면서 "인터넷 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해 별도의 기금을 설치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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