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온 어머니는 아들이 오래전부터 앓던 우울증이 최근 너무 심해져 환청ㆍ환각에 시달리고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호소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그는 독한 치료제를 복용하며 계속 브레이크 댄스를 췄고 춤꾼으로 최고 영예를 안은 유명인이다.
자신이 이끌던 비보이팀이 2007년 세계적인 권위를 갖는 비보이 대회에서 우승했고, 방송 아카데미 등 예능 교육기관에서 교수직을 맡기겠다고 '러브콜'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런 황모(30)씨의 성공 스토리는 최근 산산이 부서졌다. 경찰 수사에서 팀의 후배 8명과 함께 정신병을 앓는 것처럼 속여 병역면제를 받은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한류(韓流)의 상징이자 젊은이의 우상으로 꼽히던 유명 비보이들의 신종 병무비리 행각은 경찰의 기획 수사망에 모조리 걸려들었다
3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황씨 등은 서울 강남 유흥가에 떠돌던 '정신질환자 행세로 징집을 피할 수 있다'는 풍문을 접하고 범행의 유혹에 넘어갔다.
신체를 훼손해 의학적 증거를 마련해야 하는 다른 병역기피 수법과 달리 이상 행동만 잘 연기하면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키로 한 것이다.
황씨와 팀의 창립 멤버인 박모(30)씨 등 고참 3명이 스트레스 장애와 정신분열증 증세로 면제를 받자, '군대 탓에 연예계 생활에 지장을 받기 싫다'던 후배들도 앞다퉈 이 수법을 따라 했다.
굳이 의사를 매수할 필요도 없었다.
집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며 횡설수설하고 식음을 전폐, 놀란 부모가 먼저 의료진에게 상황을 설명하게 해 의료진의 의심을 피했다. 이중 일부는 가족들과 증세에 대해 미리 말을 맞추기도 했다.
'1개월 이상의 입원 치료'란 면제 요건을 맞추고자 30∼40일씩 병원 신세도 졌다.
황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을 매일 강제로 먹고 갇혀 있어야 해 입원 생활은 정말 끔찍했다. 실제로 미치는 줄 알았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들은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5급(병역면제)이나 4급(공익요원 근무) 판정이 떨어지면 대다수 한 달 만에 '돈이 없다'며 병원 진료를 그만뒀고 처방받은 약은 모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병무청 군의관들도 병원의 진단결과를 믿고 큰 의심 없이 면제 판정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면제자들은 정신질환 치료를 제대로 받는지 확인하는 사후 추적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경찰 조사에서 "작년 병역비리 수사 등을 보며 언젠가 터질 일이라고 생각해 항상 불안했다. 이렇게 되니 차라리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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