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땐 ‘파행적 재정 운용’ 불가피 내년도 예산안 심의 일정이 지연되면서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준(準)예산’ 편성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예산안이 2004년 12월31일 밤 통과된 경우도 있지만, 국회 예산결산특위 내 계수조정소위 구성 지연 ‘신기록’ 달성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준예산 집행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관측이다.
준예산은 예산안이 연내 처리되지 못할 때 전(前)회계연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제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연내 예산안 처리가 안 되면 큰일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엄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일단 제도 자체가 많은 허점을 갖고 있다. 준예산 제도는 1960년 의원내각제가 도입됐던 3차 개헌 때 마련됐다. 당시 헌법은 ‘준예산 편성=내각 총사퇴·국회 해산’을 규정했다. 즉, 제도 시행이 의회 해산을 전제하는 만큼 현 상황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후 개헌 과정을 거치면서 준예산 관련 조항(54조 3항)이 삭제되지 않은 채 존치됐다. 이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는 법 규정이 미비하다.
무엇보다 준예산 집행 시 닥쳐올 각종 파행적 재정운용 상황이 문제다. 헌법·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및 시설의 유지운영비 정도만 집행할 수 있다. 따라서 각종 사업비 등은 본예산이 통과될 때까지 지원이 불가능하다.
기획재정부 류성걸 예산실장은 “당장 민생경제 및 서민생활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종 사업들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국회가 정상적으로 열리고 있는 만큼 준예산으로 가는 상황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자치단체 등은 자체 예산을 편법으로 편성해야 한다. 1995년도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회의 예산안 미의결로 연방정부가 일시적으로 폐쇄됐던 상황이 ‘준예산’ 집행에 따른 위험성을 시사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있다.
정부는 효율적 집행을 위한 ‘배정계획’을 세우는 데도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예산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작년의 경우 배정계획을 세우는 데 5일이 걸렸다”며 “늦어도 12월 27∼28일까지는 통과돼야 1월2일부터 정상 집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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