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은 이날 북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교전규칙에 따라 경고사격을 가했다. 이에 북 경비정이 남측 고속정을 향해 ‘직접사격’을 가하자 해군 고속정은 ‘격파사격’을 가해 북 경비정을 퇴각시켰다. 2분간 지속된 교전 과정에서 우리 해군의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북측 함정은 연기가 날 정도로 파괴돼 북으로 되돌아갔다. 이처럼 우리 군이 아무런 피해 없이 북 경비정을 신속하게 퇴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2004년 개정된 해군 교전규칙의 결과라는 게 군 안팎의 분석이다.
당초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등 5단계로 돼 있던 교전규칙은 2004년 개정을 통해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됐다.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썼던 2002년 연평해전에서 아픈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군이 북도발에 대비한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을 강화한 것이다. 해군 관계자는 “종전 교전규칙에 따라 대응했다면 격파사격 전 상부보고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북측의 직접사격에 의해 우리 측도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일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던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은 25분간 이어진 교전에서 우리 측 해군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NLL을 침범한 북 경비정 2척은 방송으로 퇴각을 요구하는 남측 고속정 편대를 향해 갑자기 85㎜와 35㎜ 함포로 기습공격을 가해 왔다. 선제공격을 받은 남측 고속정이 40㎜ 함포와 20㎜ 벌컨포로 대응했지만 전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해군이 북 경비정들의 NLL 침범을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단속으로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99년 6월15일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서는 대승을 거뒀었다. 당시 북 경비정들은 6월 초부터 옹진반도 남단에서 조업 중인 꽃게잡이 어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NLL을 지속적으로 침범했다. 우리 측 함정이 출동하자 긴장이 고조됐고, 결국 북한 어뢰정과 경비정은 소총과 함포로 선제공격을 해왔다. 제1연평해전에서는 14분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북 어뢰정 1척 등 2척이 침몰하고 중형 경비정 3척이 대파됐다. 북측의 사망자도 최소 3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해군의 피해는 함정 5척이 약간 손상되고 장병 9명이 경상을 입는 데 그쳤다.
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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