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뮤지컬 마니아 김 모(37) 씨는 주로 홀로 공연장을 찾는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를 통해 티켓을 예매하고 공연이 끝나면 커피 전문점에 들른다. 노트북을 이용해 자신의 블로그에 공연 관람 후기를 올리기 위해서다. 그는 “예전에는 티켓 두 장을 예매하고 함께 갈 친구를 물색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혼자 다닌다”며 “표 값도 아끼고 공연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윤 모(28) 씨는 퇴근 후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낸다. 일주일에 한두 번 혼자서 영화관을 찾고, 서점에 들러 책도 읽는다. 지난 여름휴가 때는 유럽으로 홀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윤 씨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식사 메뉴 선택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다”며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보고, 원하는 스케줄대로 움직일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혼자만의 시간 을 원하는 젊은 나홀로족의 증가추세는 최근 문화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퇴근 후 동료들과 친목도모를 하는 것보다 홀로 책을 읽고 영화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단순히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세상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거부하는 코쿤족 , 은둔형 외톨이 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남들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인맥도 관리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휴식과 안정을 찾는다.
멀티플렉스 극장 CGV의 경우, 지난해 2분기 20.3%였던 1인 1티켓 예매율이 올해 24%를 기록했다. CGV 홍보팀 이상규 씨는 “영화 자체를 즐기기 위해 홀로 극장을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통계 수치보다 직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정도는 더 크다”고 말했다.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 또한 올 상반기 1인1티켓 구매율이 전체의 8.1%를 차지해 2008년 7.5%, 2007년의 6.6%에 비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ENT가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인 1티켓 구매 수는 2006년 9만6000건, 2007년 14만1000건, 그리고 지난해 21만4000건으로 늘어났다.
클래식 음악 동호회 ‘슈만과 클라라’의 단체 관람 담당자 송주호 씨는 “티켓을 신청할 때 두 장인 경우보다 한 장일 때가 더 많다”며 “올 상반기 20여개 단체관람 신청자 중 전체 인원의 60%가 티켓을 한 장만 구입했다”고 했다. 마니아 적 요소가 강한 공연일 경우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아진다. 한 공연 관계자는 “최근 1인 관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공연 기획과 마케팅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작품성 있고 실험적인 공연을 선호하는 1인 관객들을 겨냥해 작품 선택의 폭도 더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추세다.
공연 기획사들은 1인 관객을 위한 이벤트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여러 개의 공연을 묶은 1인1티켓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재관람율이 높은 나홀로족에 맞춰 티켓 재구매시 50%를 할인하기도 한다.
특히 구조상 불가피하게 좌석이 한 자리씩 남거나 떨어져 있는 경우가 생기는데 1인 관객은 이러한 빈자리를 채워주는 고마운 손님이다. 아예 싱글석을 지정하고 1인 관객들에게 절반 이상 저렴하게 티켓을 판매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나홀로족이 늘면서 혼자 가기에 좋은 장소가 입소문을 타기도 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맥그로힐 출판사의 혼자서 식사하기(table for one)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나홀로족에게 커피 전문점은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무선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홀로 시간을 보내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이러한 커피 전문점들의 명당자리는 햇볕이 잘 드는 대형 유리창 앞 일렬로 배치된 의자다. 늦게 도착하면 이미 좌석이 꽉 차 다른 커피 전문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특히 노트북 사용자들에게 전원 사용을 위한 콘센트를 꽂을 수 있는 자리는 명당으로 치열한 자리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커피 전문점들은 1인용 좌석을 늘리는 한편, 매장에 잡지와 다양한 도서를 비치하고 있다.
카페와 도서관, 서점이 결합된 북카페 인기에 이어 최근에는 개별 방으로 이뤄진 룸 카페 가 나홀로족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룸 카페 는 2~3시간 동안 1인당 약 1만원의 사용료를 지급하면 방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TV를 관람하거나 무한 제공되는 각종 커피와 음료, 그리고 빵과 과자까지 즐길 수 있다. 김밥이나 피자 등의 음식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룸카페는 젊은이들의 독립적 휴식공간으로 각광받으며 신촌주변에만 1년 새 5곳이 들어섰다. 신촌에서 룸카페를 운영 중인 김 모(45) 씨는 “주위 시선에 방해받지 않으려는 커플 손님도 많지만, 홀로 시간을 보내려는 손님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홀로 식사하기 좋은 음식점도 따로 있다. 전체 좌석의 절반 이상이 1인석인 일본식 라면 전문점은 나홀로 족들에게 이미 유명해졌다.
부천에 사는 직장인 박 모(31) 씨는 “내가 유난히 독립적이고 사색을 즐기는 성격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적당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것이 이제는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또 “퇴근길에 카페 창가에 앉아 혼자 마시는 커피 한잔만큼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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