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 라이프에 주목하라
강력한 구매력…‘나를 위한 투자’에 올인
뮤지컬 VIP석·최고급 레스토랑…당당한 자발적 외톨이
나는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올려들을 수도 있고
맨발로 집안을 돌아다닐 수도
소설책을 읽으며 아침식사를 할 수도 있다.
주말이면 아침 늦도록 늘어지게 자고
먹고 싶을 때 식사를 하면 된다.
그게 바로 싱글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멋진 사치다.
무엇보다 난 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한다.
스스로 덜 지치고 힘들 때 더 나은 결과들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내버려 둘 때 더 능률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 없이는 안 된다고? 누가 그러던가!
- <올 댓 싱글> 프롤로그 中
[이코노미세계] ‘싱글(1인·나홀로) 라이프’가 주목받고 있다. 여기서 싱글이란 단순히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를 뜻하지 않는다. 학업 등의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고시원에 거주하거나 배우자를 사별한 노인 등 비자발적 1인 가구와도 거리가 멀다.
자발적 싱글이라 불리는 ‘나홀로족’은 자신만의 공간(거주지)에서 적극적으로 혼자 식사하고 노는 것을 즐기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사회학적 용어로 우울한 세대, 즉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이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나홀로족에 대해 "우울한 세대임엔 틀림없지만 우울함 자체를 즐기며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새로운 세대이자 계층"이라고 설명한다.
싱글 라이프의 특징은 정기적으로 럭셔리하게 식사하고, 문화생활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값비싼 뮤지컬 VIP석, 수백만원대 취미생활용 고급 자전거나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로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소비집단이다.
나홀로족 여성들은 커피숍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고급커피나 수입산 프리미엄 생수를 마시는 것이 곧 '자존심'이다. 유행에 민감해 10살 이상 차이나는 세대의 의상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삶을 불안해하며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심리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래서 사주카페나 역술원, 온라인 운세서비스의 단골이다. 애완동물을 유일한 가족처럼 여기며 애완용 옷이나 음식은 최고급을 선호한다.
나홀로족 남성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할인쿠폰을 모으고 세일 찬스를 기다리는 등 때론 깐깐한 주부근성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버는 돈을 모조리 취미생활에 쏟아 붓기도 한다. 좀 더 일찍 나홀로족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일본에서는 한 가지 일에 빠져 사는 이들을 ‘오타쿠형 남성’이라고 불렀다. 여성을 만나는 것을 시간낭비로 생각하지만, 영원한 싱글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요리하는 남성의 증가도 나홀로족 트렌드와 연관을 맺고 있다. 이들은 요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전자레인지와 오븐 겸용 상품, 복잡한 기능을 줄인 믹서기나 쿠킹도우미 상품의 주 고객이다. 레시피를 챙겨보며 맛있는 요리나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자취방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 우울한 싱글 의 이미지는 찾아 볼 수 없다.
<싱글, 2% 더 행복한 선택>의 저자 조은강씨는 “완벽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주부근성이 강한 나홀로족 남성은 비록 유행에 뒤처진 패션스타일을 고수하기도 하며 영화관람과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지는 않지만, 요리를 하거나 버는 돈을 모조리 취미생활에 쏟아 붓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또 "나홀로족 여성은 유행에 빠르고 운동이나 식사 관리, 웰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역술원을 자주 찾는다"고 분석했다.

용산구 한남동에 사는 김유영(32·여)씨는 지난 주말, 자신이 종종 찾는 서울시립미술관에 갔다. 미술관 3층에 카페 ‘보자르’맨 구석 창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커피와 쿠키 몇 개를 시켜놓고 MP3로 최신 발라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가끔 지루할 땐 ‘셀카놀이’를 즐긴다. 이러한 일상을 블로그에 올려 인터넷에서 인맥을 형성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번 시립미술관 카페 나들이 땐, 9월 중순 막을 내리는 르누아르 특별전 관람도 함께 했다. 김 씨는 “약속을 정해 이성이나 동성 친구들을 만나고, 서로 비슷하지 않은 취미를 억지로 맞추는 번거로운 여가를 보내고 싶지 않다”며 “주말을 만끽하기 위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고 했다. 김 씨는 식사도 한 달에 1∼2번 이태원의 유명 외국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혼자 다양한 브런치 메뉴를 즐긴다.
그렇다고 김 씨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하고 메신저나 문자, 전화로 그녀의 인맥 네트워크를 꼼꼼히 관리한다. 열성적이진 않지만 와인동호회 모임에도 참석해 얼굴 도장을 찍고, 정보를 얻기도 한다. 회사 회식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김 씨는 “홀로 살림을 책임지려면 능력(수입)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이를 위해선 회사 등에서의 인맥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1980년 4.8%에 불과했던 1인 가구 비중은 2007년 20.1%로 급증했다. 통계청은 2030년에는 1인 가구 비중이 23.7% 늘어난 471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을 포함하면 1인 가구는 600만~650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2030년엔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1.8%에 달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업계가 주목하는 점은 1인 가구 중 20∼40대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2005년 기준) 있고, 이 비중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데 있다. 강력한 구매욕을 지닌 채 새로운 소비 스타일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 ‘나홀로족’이 다양한 영역에서 상품시장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삼미 기자 smlim@segye.com[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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