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수입 정부입장과 문제점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 박언영 사무관은 "이번에 발표한 정부의 병행수입 활성화 대책은 물가대책 일환으로 기존 병행수입 규제의 부분 완화나 개선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외국과 달리 병행수입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어 제도의 원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극 개입할 생각이다. 특히 기존 업자들의 병행수입 방해 등엔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조치로 강력 대응할 방침이다.
공정위 장득수 과장은 "공정위에서 별도의 대책을 갖고 있진 않지만 병행수입제와 관련해 1998년 불공정거래행위 유형고시에 반하는 사례가 있을 경우 엄정한 개선조치를 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방침은 새로운 대책이라기보다 정부의 병행수입 활성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그래서 시장 일부에서는 이런 정도로 과연 의도한 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코트라 취리히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공정거래위원회가 2004년에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병행수입제 도입을 시도했다 실패한 적이 있다. 카르텔이 처음 형성된 유럽에서도 그 힘이 막강하기로 유명한 스위스가 병행수입 금지 조항을 철폐하려 했던 것으로 각국의 주목을 끌었다.
스위스는 당시 병행수입 금지규정으로 인근 독일의 할인매장에서 2개 묶음 코닥필름이 2.46유로에 팔리고 있는데 자국에서는 8유로로 가격이 3배 이상 높았다. 이런 사정으로 스위스 6위 유통업체 점보사가 다른 인접국 수입상으로부터 코닥필름을 직수입해 평균 시중가격보다 16%나 싸게 판매했다. 이에 코닥이 병행수입금지 조항을 근거로 소송을 냈고, 법정다툼 끝에 점보사에 승소했다. 스위스 국민은 지금도 인접국과 비교해 비싼 돈을 주고 수입 외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병행수입 시장전망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고가의 수입품뿐만 아니라 일반 공산품 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문제는 물가잡기용으로 급조한 정부 방침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는 점이다.
벤츠코리아 김한준 차장은 "병행수입으로 고객은 저렴한 차량을 구입할 수 있어 반가울 수도 있다"면서 "벤츠코리아 차량은 배기가스, 기타 옵션 등이 국내 환경에 맞춰 수입 판매하는데 반해 병행수입차는 같은 것이라도 부품이나 옵션사양 등이 다른 제품으로, 허가되지 않은 사양과 부품은 아예 가져 오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본사에서 구매한 차량은 고객관리 프로그램(CRM)으로 차대번호를 조회하면 유통과정을 모두 알 수 있지만 병행수입차는 기록조회를 할 수 없어 심지어 도난차량인지 여부도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
김 차장은 "특히 벤츠는 차대번호로 조회가 안 되면 차량 열쇠(보통 2개가 제공됨) 분실 시 복제가 불가능해 차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단순히 가격만 보고 구입한다면 고객은 최고 브랜드 차량이 가지는 다양한 혜택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벤츠코리아는 SK네트웍스의 병행수입으로 전시장에서 고객 문의사항이 늘어 설명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판매량에서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외제차 시장에서 현재의 병행수입은 한 순간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본에서도 10년 전 이러한 상황이 있었지만 지금은 본사에서 구입하는 비율이 이전과 유사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3년 전부터 일반공산품(의류, 신발 등)을 병행수입 하고 있는 최제묵 사장(37, http://cafe.naver.com/brandimport.cafe)은 최근의 병행수입 활성화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했다. 그는 "인터넷 활성화에 따른 온라인 쇼핑몰의 규모가 커지면서부터 병행수입이 시장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최근 소비자들은 일반 수입매장에서 색상이나 스타일이 비슷한 의류나 신발 등을 구입하기 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신상품 등 타인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튀는 제품을 선호한다"며 "이와 같은 추세가 일반 공산품의 병행수입을 촉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병행수입을 해보니 국내에서 판매되는 기존 수입제품 가격거품이 상상외로 커 놀랐다"며 "인근 국가와 비교해도 아디다스, 나이키, 기타 공산품 가격은 2~3배 이상 비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반 공산품 병행수입 업체의 규모가 영세해 기존 수입업자들의 불공정 방해 전략도 갈수록 지능화 되고 있는 점이다. 최 사장은 "소규모 병행수입 업체의 제품정보가 통관과정에서 기존 수입업자들에게 노출돼 대형 메이커들이 가짜라고 판명하면 통관이 보류되거나 반송되는 등 이들의 횡포가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A업체가 3000만원을 들여 수입한 의류를 ㄱ사에서 정식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가짜라고 판정해 수입이 보류돼 소송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2년에 걸친 공방 끝에 결국 정상제품으로 판결을 받았지만 그간 업체가 겪은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병행수입 활성화 여부는 향후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독점 수입업자들의 로비나 견제로 지난 10여년처럼 제도를 유명무실한 상태로 방치한다면 지금의 이같은 분위기는 반짝 효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불공정행위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 기존 독점업자나 대기업들의 횡포를 차단해야만 수입상품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변화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듯하다.
손정우 기자 jwson@segye.com
◆가격하락·서비스 개선 등 무한경쟁 돌입
◆국내 유통업체들 병행수입 현황
◆신발·가방 등 잡화류 정식 제품보다 규모 커
◆“병행수입 업자가 AS도 책임” 원칙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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