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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빛낸사람들]도요다 기이치로 1894∼1952 일본

입력 : 2007-10-13 09:49:00 수정 : 2007-10-13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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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자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그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다. 이는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1894년 시즈오카현 고사이시에서 태어난 기이치로는 17세부터 도쿄, 나고야, 도요하시 등을 전전하며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23세 때 도쿄제국대학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기이치로는 곧바로 법학부에 입학해 반 년간 수업을 청강한다. 연구·개발자, 기술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였지만 비록 반 년간의 법률 공부가 미래의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쌓았을지도 모른다. 도요타 방직공장에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1929년 G형 자동방직의 특허권을 영국 플랫사에 양도하기 위해 유럽에 발을 디뎠지만, 당시 섬유사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귀국 후 특허권을 양도하고 받은 10만파운드로 30년 5월 방직기 제작소 내에 자동차 연구실을 만든다. 특히 그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포드 T모델의 활약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때 “외국차가 일본 시장을 장악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언젠가는 꼭 국산차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934년 3월 자동차 시험제작 공장을 완성하고, 그해 9월 도요타 최초의 자동차용 엔진인 ‘A형엔진‘의 시제품을 완성했다. 1934년에는 자동차용 특수강을 만들기 위한 제강연구소를 완성시킨다. 1935년부터 A형엔진을 탑재한 A1승용차의 시제품이 완성됐다. 1934년부터는 트럭 제작을 계획했고, 3개월 만에 완성된 G1형 트럭은 시작차 완성과 동시에 양산체제에 들어간다. 현재 도요타시가 된 아이치현 고로모 마을에 58만평의 공장건설 용지를 매입, 1937년 8월 도요타자동차공업주식회사가 정식 설립돼 부사장에 취임한다.
1941년 1월 사장에 취임한 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으로 승용차 생산은 트럭 등 군수용품의 생산으로 바뀌어버렸다.
1945년 8월 전쟁이 끝나고 그는 대중적인 승용차 시대를 예상하고, 소형 승용차 연구를 시작했다. 1947년 도요타 독자적으로 최초 엔진인 ‘S형엔진’이 완성됐고, 이를 탑재한 도요타 SA형 세단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50년 전쟁후 급격한 인플레와 노동쟁의로 도요타 자동차는 시련에 직면했다. 경영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이시다 다이조가 사장에 취임했고, 불과 20일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경제는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2년 2월 회사를 회생시킨 이시다 다이조는 기이치로에게 사장으로 복귀할 것을 요청했고, 그해 7월 도요타 자동차의 사장으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런 뇌출혈로 5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도움말:삼성교통박물관, 도요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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