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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언론 자유의 ‘숨 쉴 공간’ 폐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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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04 23:15:22 수정 : 2021-08-04 23: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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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징벌적 손배’ 언론법 밀어붙이는 이유 뭔가

“무릇 표현의 자유에는 그것이 생존함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

2002년 1월 22일. 우리 대법원은 언론의 표현의 자유에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최초의 설시를 내놓는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자유로운 견해의 개진과 공개된 토론 과정에서 다소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진실에의 부합 여부는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가 중시돼야 하며,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객관적 진실과 일치할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공적인 사안과 공인에 대한 언론의 비판·감시역할 등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장혜진 정치부 기자

숨 쉴 공간은 표현의 자유가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다. 이 표현의 유래는 196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대 버튼사건 판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연방헌법 수정 제1조가 명시한 표현의 자유에는 ‘숨 쉴 공간(breathing space)’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이듬해인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사건에서는 언론의 위축효과, 이른바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s)가 주요한 쟁점이 된다. 연방대법원은 ‘공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후에 그 비판이 진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비판 대상으로부터 제소당할 위험과 그에 따른 비용부담의 압박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에 대한 입증이 없다면 공적인 인물을 비판한 언론에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2021년 한국 언론 자유의 숨 쉴 공간은 폐쇄 위기에 놓였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기준인 허위 조작 및 왜곡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상식선에서 악의적이고 조작이라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 법정에서 충분히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단 이 법을 만들어야 하니, 앞으로의 문제는 법원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판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언론전담재판부에서 일했던 한 법조인은 “반대에 부딪히면 요리조리 내용을 바꿔가며 법안을 수정 발의하는데 그 내용이 현실이나 법리에 맞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면서 “어떻게든 언론에 대한 징벌배상을 통과시키려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판사 출신인 민주당 김승원 의원(당 미디어혁신특위 부위원장)조차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법안소위에서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 법안에 담긴 ‘언론보도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 대해 “제가 20년간 알고 있던 손해배상 법리는 배상을 청구하는 측이 (피고인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른 의원님들은 그 이해가 다른 거냐”고 반문했다. 소위의 다른 의원들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지만 법안은 그대로 가결됐다.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들이 각기 발의한 법안 16건을 엮어 만든 내용이다.

민주당은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을 퇴화시키려는 언론질식법”이라는 야당과 언론의 비판,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입법례”라는 국회입법조사처와 주무부처의 지적에도 언론중재법의 8월 임시국회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차기 대선을 불과 7개월여 앞둔 지금, 졸속 처리를 밀어붙여야만 하는 민주당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장혜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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