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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간 10번 내쫓겨"…'강제철거' 매운탕집 주인의 눈물

입력 : 2021-07-27 20:30:03 수정 : 2021-07-27 20: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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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라니 죽을 수밖에"…저항하다 경찰에 진압당해
[촬영 김치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했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모양이야. 죽으라고 내모는 데 죽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

매운탕집 사장 이모(75)씨는 27일 아수라장이 된 식당 안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말했다.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있는 이 매운탕 가게는 한때 이씨의 집이었고 삶의 터전이었다. 왕년에 손님들로 북적였던 이곳은 이날 불이 꺼지고 테이블이 모두 치워진 채 바닥에 인화성 물질과 쓰레기가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마음 편히 장사하고픈사람들의모임(맘상모)에 따르면 이 가게에서 명도집행이 시작된 건 이날 오전 11시께. 강제철거를 맡은 용역 직원 20여명이 들이닥쳐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이씨의 가게를 산산조각 냈다.

이씨는 1972년 종로6가에서 음식 장사를 시작해 종로1가 피맛골을 거쳐 경복궁역 근처인 이곳으로 오기까지 49년간 10번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서울 재개발과 재건축이 진행될 때마다 때로는 이유조차 모른 채 쫓겨났다고 이씨는 회고했다.

이씨는 2013년 3월 보증금 3천500만원에 월세 250만원, 관리비 30만원에 계약을 맺고 이곳에 들어왔다. 권리금 5천만원을 냈고, 시설비로 7천만원을 썼다.

[촬영 김치연]

그 뒤로도 월세와 관리비를 합해 매달 310만원을 내왔고, 대출을 받을지언정 한 번도 월세를 밀린 적은 없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제 맘 놓고 장사를 해보나 했지만 2016년 2월 건물주가 바뀌었고, 1년이 지나자 새 건물주는 이씨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이 건물을 사들인 곳은 영화 '미나리'의 수입배급사인 판씨네마와 새곳 등 2곳이다. 법정 다툼에 나섰지만, 상가 세입자의 재계약권을 최대 10년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기 전이어서 법은 이씨 편이 아니었다.

2차례 패소라는 결과를 받아든 이씨는 "살려달라. 이대로 내쫓기면 어디를 가겠냐"고 건물주들한테 유서까지 썼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권리금과 시설비 1억2천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나중엔 '권리금만이라도 돌려달라'고 했는데 3천만원 주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판씨네마 관계자는 "재판 결과 승소했고, 법에 따라 철거를 진행한 것이라 법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건물이 노후해 안전관리가 어려운 상황이고, 승소하고 나서도 지난 3년간 세입자 사정을 봐서 기다렸다"고 말했다.

물러설 곳이 없던 이씨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쳐들어오자 그간 준비해뒀던 인화성 물질을 바닥에 뿌렸다. 다행히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이씨는 용역 직원들이 돌아간 후 자포자기 심정으로 가게로 돌아왔다고 했다.

[촬영 김치연]
[촬영 김치연]

이씨는 "밤 9시에 모든 것을 끝낼 것이다. 죽을 각오를 마쳤다"면서도 "건물 위층에 있는 고시원 사람들이 다칠까 걱정돼 내가 경찰에게도 피하게 하라고 얘기했다"며 가게 문을 걸어 잠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채 오후 내내 이씨의 행동을 주시하던 경찰은 이날 오후 5시 45분께 소방과 함께 가게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경찰관들은 이씨를 제압해 가게 밖으로 데리고 나와 안전을 확보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씨의 부인은 "손이 떨리고 말도 나오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씨를 상대로 안전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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